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을 연내에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재계에선 1·2차 상법 개정에 이어 3차까지 더해지며 경영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그간 자사주가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나쁜 사례가 많았다. 이번 상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자사주 마법’을 우리 자본시장에서 퇴출하겠다”며 이 같은 입장을 전했다. 오너 일가가 회삿돈을 활용한 자사주 매입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걸 봉쇄하겠다는 의미다.
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오기형 의원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 소각을 원칙으로 하고, 자기주식보유처분계획에 관해 매년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341조)고 규정한 게 핵심이다. 법안 시행 전 매입한 자사주에 대해서도 6개월의 추가 유예기간을 주고 같은 의무를 부과했다.
민주당은 이번 상법 개정을 통해 주가 재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가 묵혀둔 자사주를 태워 없애버려 주식 총량이 줄어드니 주가가 오르게 된다는 기대다. 오 의원이 원내대책회의에서 “코리아 프리미엄을 위한 제도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될 경우 국내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국에는 ▶창업주·경영진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기존 시세보다 싼값에 신주를 매수할 수 있게 하는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주총 의결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어서다. 이 때문에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넘기는 방식이 사실상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한국기업법학회장을 지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경영권 방어 장치가 도입되지 않으면 행동주의펀드 등과의 경영권 분쟁만 늘어날 것”이라며 “자사주 소각 강제는 1·2차 상법 개정보다 충격이 훨씬 더 직접적”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집권 직후부터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코스피5000’을 기치로 걸고 상법 개정을 연달아 밀어붙이고 있다. 7월에는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1차 개정을, 8월에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을 담은 2차 개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주가 부양 효과는 제한적이란 반론도 있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사주 소각은 한 번 발생하면 효과가 즉시 소진되는 단발성 이벤트”라며 “소각을 강제하면 장기적 안정성과 부양 효과를 잃게 된다”고 했다.
해외와 비교해도 이번 개정안은 전례가 거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뉴욕, 델라웨어)·영국·일본은 모두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있고, 독일만 자본금의 10%를 초과한 자기주식에 대해 3년 내 처분 또는 소각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내 개정안처럼 ‘모든 자사주’를 ‘1년 안에’ 강제 소각하는 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기업에 부담을 주는 상법 개정은 전광석화로 진행되고 있는 반면, 배임죄 폐지 등 재계를 향한 당근책은 아직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다. 코스피5000 특위 위원인 김남근 의원은 “경영권 방어에 대해선 의무공개 매수제도 등 재계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