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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복종의무 폐지…’복지부동’ 우려도

중앙일보

2025.11.25 08:31 2025.11.2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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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이 25일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 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1949년 국가공무원법이 만들어진 이래 76년간 유지되어 온 공무원의 ‘복종 의무’가 사라진다. 상관의 감독과 지시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이행을 거부할 수 있다. 공무원이 명령과 복종의 통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소신껏 일하기 위해서라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공직사회 내 업무 지연, 복지부동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사혁신처는 25일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 등으로 바꾸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행 법은 57조에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개정안은 상관의 지휘·감독에 대한 (하급자의) 의견 제시는 물론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지휘·감독을 거부할 수 있게 했다. 또 거부를 이유로 징계하지 못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다음 달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공무원 노조는 즉시 환영 성명을 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12·3 비상계엄을 통해) 맹목적 복종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저리게 목격했다”고 했다.

김경진 기자


공직사회 혼란 “위법·적법 경계 애매, 개인에 책임 돌릴 것”

공무원 노조는 또 “이번 개정은 공직사회가 다시는 헌법 유린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게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했다.

하지만 공직사회 내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가공무원법은 그간 수차례 개정됐지만 복종 의무는 정부 조직의 효율적 운영 등을 위해 유지해 왔다. 익명을 원한 중앙부처 공무원(4급)은 “상관의 지시에 따라 수행한 업무에 문제가 생겨도 복종 의무를 내세우면 방어할 수 있는데, 법 개정으로 책임이 조직이 아닌 (업무를 거부하지 않고 맡은) 개인에게로 책임을 돌리게 될 것”이라며 “논란 가능성이 높은 업무일수록 잘 움직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경찰 공무원(경정)은 “복종 의무가 있어도 정치·정무적 판단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간부들이 있는데 아예 (복종 의무가) 사라지고 나면, 중구난방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차준홍 기자
위법·적법을 가르는 경계선도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사처 고위 공직자 출신은 “과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 때도 국가공무원법 개정이 추진됐었다”며 “하지만 어디까지를 위법행위로 볼 것인지를 놓고 논의를 이어가다 결국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공무원(6급)은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뒤에야 상관의 (직무상) 명령이 위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더욱이 부하 직원이 내린 (위법성) 판단을 신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작용 최소화를 당부했다. 육동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은 “(개정안을 통해) 수평적 직무 환경 조성을 기대할 수 있겠으나 공무원 개인의 정치·정무적 판단으로 (공직사회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인사처 관계자는 “지휘·감독 위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은 개정안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한 시행령에 담을 것”이라면서 “기본적으론 단순히 의심의 정도가 아니고 객관적으로 (법 위반이라는) 합리성을 갖출 정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위법으로 판단하고 거기에 대해 명령을 거부하면 된다”고 밝혔다.

국가공무원법과는 별개로 군인이 정당하지 않거나 위법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군인복무기본법 개정도 의원 발의로 추진되고 있다. 국방부 군인권개선추진단은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소위에 제출한 의견서 등을 통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검토 의견에서 군인의 명령 복종 의무를 규정한 현행 법 25조에 대해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에서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정당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또 단서 조항으로 ‘단,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에는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문구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관련 법률 개정 움직임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후부터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의원들은 군인의 명령 불복종 조항을 신설하는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을 다수 발의했다.

다만 국방부가 제시한 ‘정당한 명령’이나 ‘헌법을 준수한 명령’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자의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방위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정당한’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군 지휘체계를 근본부터 흔들 수 있다”고 했다.





김민욱.이유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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