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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업뎃, 그 사람이 했다며?" IT판 뒤흔든 '토라포밍' 실체

중앙일보

2025.11.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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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 향한 업계의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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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중의 뭇매를 맞은 카카오톡 업데이트 사태의 여파는 홍민택 카카오 최고제품책임자(CPO) 책임론에서 그의 전 직장 토스로까지 옮겨붙었다. 내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감(혹은 무리)하게 빠른 속도로(혹은 성급하게) 대규모 업데이트를 감행한 그의 업무 스타일이 토스와 닮아 있다는 게 요지였다. 한마디로 홍 CPO가 카카오에 ‘토라포밍’을 시도했다는 것. 토라포밍은 토스 전·현직자, 그리고 IT 업계에 은은하게 퍼져 있는 표현이다. 토스 출신들이 이직 또는 창업한 회사에 ‘토스식’ 업무 스타일을 이식하려 할 때 ‘저 사람, 토라포밍 중이네’라고 말한다. 마치 SF에서 낯선 행성을 인간들에게 익숙한 환경으로 만드는 것(테라포밍·Terraforming)처럼 말이다. 이직이 잦은 IT업계 특성상 한 기업 안에도 온갖 기업 출신들로 가득한데, 왜 유독 토스라는 기업에만 ‘토라포밍’이란 표현까지 나오는 걸까. 현재 IT 업계에 스며들고 있는 토라포밍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분석했다.
토스 프로덕트 오너(PO)로 수년간 일해 온 A는 2년 전쯤 일을 그만둔 뒤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쉬는 기간 동안 종종 다른 기업 채용 담당자로부터 티타임 제안이 오곤 했다. 그때 만났던 국내 유명 IT기업 채용 담당자는 A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는 A님 일하고 싶은 대로 원없이 일할 수 있어요.”

◆‘1am=1pm’ 토스 출신의 실체=이후에도 비슷한 만남을 몇 번 더 경험한 뒤 A는 깨달았다. ‘토스에서 n년 이상 근무했다 하면 다들 일친자(일에 미친 자)인 줄 아는구나….’ 실제 국내 한 HR 스타트업 관계자는 “(토스 출신들은) 새벽 1시에 전화해도 오후 1시에 받는 것처럼 일한 사람이란 이미지가 있어서 기업들이 선호하는 인재인 건 맞다”고 말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토스 출신 창업가는 첫 이미지부터 좋은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적어도 미팅의 기회가 한 번은 더 주어진다는 게 벤처캐피털(VC) 업계와 토스 출신 창업가들의 공통된 증언. 익명을 요청한 국내 한 스타트업 채용 담당자는 “‘토스 출신은 업무 의욕이 높고 주도적’이라는 인식이 있어 초기 스타트업이나 성장에 정체가 걸려 있는 스타트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재”라고 했다.

반면 대기업 등 나름 규모를 갖춘 기업들은 토스 출신 구직자들에게 살짝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기존 토스 경력자들이 이미 그 기업이 갖춰 놓은 절차 등에 답답함을 느끼거나 적응하지 못한 채 퇴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토스 출신으로 지난해 AI 스타트업 컷백을 창업한 김담형 대표는 “토스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간 사람이든, 다른 곳에서 토스로 온 사람이든 처음엔 속도에 대한 온도차가 크다. 토스에서는 ‘배포 후부터가 일의 시작’이라고 할 정도로 완벽보다 빠른 실행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옥 기자
◆일잘러 또는 트러블메이커?=카톡 업데이트 사태 후 카카오의 내부 관계자는 “카카오 사람들은 카톡의 작은 변화 하나에도 사용자들이 얼마나 예민한지 아니까, 업데이트할 때 굉장히 조심스럽다. 홍민택 CPO 입장에선 ‘너넨 왜 그리 소극적이야? 토스는 안 그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원래 있던 직원들의 판단력을 무시한 오만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토라포밍이 오작동하면 이처럼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종종 ‘오만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국내 한 스타트업 채용 담당자는 “토스 출신 직원 입장에선 ‘여긴 일 처리도 느리고 다들 의견이 없어?’가 되고, 원래 있던 직원 입장에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저래’ 식의 불만이 생기는 거다”고 털어놨다.

토라포밍이 주목받는 건 이승건 토스 대표가 창업 초기부터 고집스럽게 만들어 온 토스만의 독특한 조직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DRI 없이 임원의 강력한 의견 개진만 존재한다면 그건 그저 악성 톱다운 문화에 불과하며, 토스가 일하는 방식과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지난달 1일 이 대표가 페이스북에 전체 공개로 올린 글 내용 중 일부다. 주어는 없었지만, 카카오 사태로 토스의 문화까지 입방아에 오르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듯 보였다. 이 대표가 언급한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는 실무 직원에게 최종 의사결정권을 주는 토스의 대표적인 업무 시스템이다. 그 기저엔 피드백을 자주 구하라(Ask for Feedback), 더 높은 수준을 추구하라(Aim Higher) 등 팀 운영 기반이 되는 코어 밸류(Core Value·핵심 가치)가 자리잡고 있다.

김경진 기자
토스에서 HR 담당 업무를 했던 한 전 직원은 “채용 과정에서도 1차 직무 면접에 통과하면 2차로 문화적합성 면접을 보는데, 코어 밸류를 바탕으로 이 사람이 토스에 어울리는 인재인지 한 시간 넘게 확인한다.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되면 직무에 적합한 인재여도 입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IT 업계 창업사관학교 ‘토스’=토스 사업 부문에는 제품 중심 조직 ‘사일로(Silo)’가 여러 개 있고 PO들이 이 사일로를 이끌고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 덕분인지, IT 업계에서 토스는 창업사관학교로도 불린다. 토스 PO로 일하다 올해 기업용 AI 에이전트 솔루션 스타트업 바이버스AI(Vibers.ai)를 창업한 신재인 대표는 “PO는 사일로 안에서 재무권이나 정책 전권을 부여받는다. 소위 ‘남의 돈’으로 사업체 간접 운영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스에서 나온 창업가들은 자신의 스타트업에 토스에서 익숙해진 것들을 ‘토스’한다. 토스에서 PO로 약 3년간 근무 후 창업한 신재인 대표는 공동창업자들과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코드 오브 컨덕트(Code of Conduct)’, 즉 팀의 행동 강령을 만드는 것이었다. 신 대표는 “토스에선 팀원들의 모든 소통과 업무가 코어 밸류에 기반해 작동했다”며 “우리 회사에도 토스에서 배운 대로 일하는 방식에 대한 정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담형 컷백 대표는 슬랙 메신저 안에서 전 직원에게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토스의 문화를 컷백에 그대로 도입했다. “정보 열람이 자유로워야 직원들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미 기록돼 있는 내용을 통해 그간의 사례들을 파악, 혼란 없이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토스의 성장과 함께 ‘토’라포밍의 형태도 진화하고 있다. 전직 토스 PO였던 한 업계 관계자는 “10년 간 토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고 갔는지 생각해 보면 ‘토스 출신’ 이미지가 시장에서 실제보다 너무 강렬하게 이미지화 돼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일부 사례가 토라포밍의 대표 사례처럼 확대 해석되는 측면도 있을뿐더러 토라포밍 역시 하나의 정해진 방향이 있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7년 간 일하던 토스에서 나와 스타트업 조직문화 컨설팅을 하고 있는 김형진 인사이드앤써 대표는 “당장 2~3년 뒤 토스는 내가 다니면서 느낀 토스와는 또 다른 문화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라며 “토라포밍도 그 사람이 토스의 어느 단계에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홍상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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