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안전모와 물통이 든 가방을 멘 채 건설 현장을 향해 달렸다. 퇴근길도 마찬가지였다. 왕복 8㎞를 훈련이라 여기면서 뛰었다. 이렇게 단련한 체력으로 전국 각지의 마라톤 대회 1위를 연달아 휩쓸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낭만 러너’로 불리며 아마추어 마라톤 분야에 혜성처럼 등장한 심진석(29)씨 이야기다.
심씨는 전문 마라톤 선수가 아니다. 본업은 건설 현장에서 비계(높은 곳에서 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만드는 구조물)를 설치하고 해체하는 비계공이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27연속 대회 우승, 풀코스(42.195㎞)는 2시간 31분 15초 등의 기록을 세웠다. 마라톤 동호인들 사이에서 ‘서브3(3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이 꿈이라고 불리는 점을 고려하면 이목을 끄는 성과다.
심씨는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한 인터뷰에서 “제일 큰 목표는 이전의 나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경쟁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하면서다.
그는 고된 비계공 일에도 마라톤과 안전화를 신고 뛰는 ‘안전화 훈련’을 계속했다. 심씨는 “마라톤 자체를 좋아하다보니 참고 견디다가 적응이 된 것”이라고 했다. 몸이 편치 않은 부모님과 장애가 있는 형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공사 현장 차량·인력 관리 유도원에서 봉급이 높다는 비계공 일을 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마라톤은 포기할 수 없었다.
심씨에게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주와 기록이다. 순위는 그 다음이다. 심씨는 “코로나 (대유행 기간) 공백기 이후인 지난해 10월 20일 처음 출전한 하프 마라톤에서 세운 기록(1시간 23분 53초)을 일주일 뒤 또 다른 대회에서 9분 단축했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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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주법을 믿는다…남 따라 할 필요 없어”
심씨는 마라톤에서 금기처럼 여겨지는 전력 질주를 해서 ‘오버페이스를 한다’는 일각의 지적도 받는다. 이에 대해 심씨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이게 준비된 페이스”라며 “나만의 특별한 주법이자 루틴이고, 나 스스로를 믿고 달린다”고 말했다.
심씨는 마라톤 동호인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하는 스포츠 손목시계도 쓰지 않고, 1만원짜리 ‘카시오’ 시계를 찬다. 고가의 장비는 중요하지 않단 이유에서다. 심씨는 “다른 사람을 따라 할 필요가 없다”며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하는 게 좋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심씨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개설 한 달여 만에 21만명을 넘었다. 영상엔 ‘그간 나는 온갖 핑계 속에 살았다’는 댓글 등이 달렸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정과 정신력만으로 달려온 심씨의 ‘낭만’에 반해서다. 심씨는 “처음 한두 달은 발에 물집도 잡히고, 발바닥도 많이 아팠다”면서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말자’고 이를 악물고 했다”고 했다. 심씨는 자신이 해병대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구호도 외치고 소리도 지르며 자유롭게 뛰는 거다”며 웃었다.
향후 목표를 묻자 심씨는 “100살까지 달릴 것”이라고 답했다. 최근 비계공 계약이 끝남에 따라 현재는 마라톤 협회에서 일하며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수차례 완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레이스 도중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포기하면 어차피 출발 지점까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은 똑같잖아요? 그럴 바엔 완주 지점까지 가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