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법제사법위원들은 26일 재판소원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당 지도부가 내란전담재판부 연내 도입 드라이브에 나선 상황에서 법사위원들은 법원행정처 폐지와 재판소원제 도입 등 법원을 제도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12·3 비상계엄) 포고령이 국민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있음에도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부는 비상계엄 합법을 전제한 비상회의를 소집했다”며 “대법원은 기본권 보장에 굉장히 소홀하거나 둔감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법사위원들에게선 “사법 불평등이 임계치에 달했다”(최혁진 의원)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과정에서) 동일하게 적용받아야 될 법리와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박은정 의원) 등 비판도 나왔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재판소원을 두고 4심제 논란이 뜨겁지만, 민주당은 패널 대부분을 도입 찬성론자들로 채웠다.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형태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노희범 에이치비 법률사무소 변호사, 남상규 헌재 기획심의관, 안승훈 서울고법판사 등 5명이 패널로 참가했다.
5명 중 재판소원에 반대한 사람은 한명이었다. 안상훈 서울고법 판사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제한한다”거나 “재판을 통해 최적화된 결론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 판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동등하면서도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존재하고, 그 위에 최고 사법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사법권을 통제하는 재판소원은 헌법 기관 권한 관계에 근본적인 변경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률 사항으로 결정하면 대한민국 헌법은 사실상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고 강조했다.
안 판사의 지적에 추 위원장은 즉각 반박했다. 추 위원장은 “일제 치하에 우리가 식민지 피지배국으로 스스로 주권을 반납했고 독립할 수 없다는 것은 시인했다는 일제 논리하고 뭐가 다르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헌법도 시대가 발전하고 민주 의식이 깨어나면 국민 수준에 맞게끔 발전한다”며 “(헌법이) 완전 무결하지 않는데, 갑자기 헌법을 완전무결성을 숭상하면서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안 판사가 고립되자 박희승 민주당 의원이 나섰다. 그는 “패널 구성도 좀 공평하게 해야지, 헌재에 근무하거나 헌법 전공자 위주로만 토론을 해버리니까 의견이 전혀 반영이 안 되지 않냐”며 “발언 기회를 달라”고 따졌다. 그러자 박은정 의원은 “안 판사 의견도 충실히 잘 논의를 해보도록 하겠다”고 “다음에 또 하자”며 거절했다.
판사 출신인 박 의원은 토론 초반부에도 “주최한 서영교 의원님께서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재판소원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운을 뗐다. 이어 “권리 구제는 여러 가지 기관을 통해서 할 수 있지만, 국민들의 편의성이나 사법 경제성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토론회 후 중앙일보에 “심급이 올라갈수록 비용이 늘어난다. 서민이나 중산층은 부자들하고 소송하면 이길 수 없다”며 “서민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당 정체성에 맞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밀한 부분을 조정해서 개혁해야지 뭉텅뭉텅 해버리면 개악이 될 수 있다”며 “깊은 생각 없이 밀어붙이는 것 같다. 집권 여당은 충분한 토론으로 책임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앞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조희대 대법원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스스로 회복할 길을 저버렸다”며 “내란전담재판부를 포함해 대법관 수 증원 등 법원조직법, 재판소원, 법왜곡죄 등 사법개혁법안 연내 반드시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날엔 전현희 의원이 법원행정처 폐지, 사법행정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한 사법개혁안 초안을 발표하며 “당론으로 추진해 올해 내에 통과하는 게 목표다. 이번 개혁안은 사법행정 정상화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