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성환 기자] 마우리시오 타리코(등록명 타노스) 코치의 '인종차별 사태'가 어디까지 번지게 될까. 그가 인종차별자라는 낙인을 피하지 못한 가운데 시선은 한국프로축구심판협의회로 향한다. 과연 심판협의회는 강경하게 외쳤던 국제축구연맹(FIFA) 제소로 억울함을 풀어낼까.
전북은 25일 구단 공식 채널을 통해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가 타노스 코치에 대해 내린 징계 결정과 그 배경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며 "타노스 코치와 논의한 결과 이번 사안에 대한 상벌위 결정이 사실관계와 의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면밀한 검토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심 청구를 결정했다"라고 발표했다.
타노스 코치는 이번 사건으로 한국 축구를 떠나게 됐다. 전북은 "안타까운 소식도 함께 전한다. 심리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타노스 코치는 깊은 고민 끝에 사임 의사를 전하였다"라고 밝혔다.
거스 포옛 감독과 함께 K리그에 몸담은 지 1시즌 만에 돌아가게 된 타노스 코치. 그는 "수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과 일하며 그들의 문화, 인종과 관련해 어떠한 문제도 없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왔다. 이를 축복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 저는 지속적으로 해명했던 모든 상황의 맥락, 문화적 표현과 의미를 무시당한 채 단 한 번의 오해로 '자칭' 권위자들로부터 인종차별 행위자라는 오명을 입게 됐다"라고 토로했다.
또한 타노스 코치는 "저의 삶은 국적과 인종을 떠나 축구인으로서 안전하고 존중과 평화, 법 앞의 평등이 있는 곳에서 계속돼야 하기에 슬픈 마음을 안고 이번 시즌 종료 후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성공과 역사를 함께할 수 있었던 구단과 선수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주신 팬들에게도 정말 감사하다. 잊지 않겠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사진]OSEN DB.
사건은 지난 8일 열린 전북과 대전하나시티즌과 경기에서 발생했다. 타노스 코치는 판정에 항의하며 팬들의 호응을 유도하다가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심판협의회가 문제 삼는 건 이 과정에서 나온 타노스 코치의 제스처다. 그가 김우성 주심을 바라보며 동양인을 비하하는 제스처인 두 눈 찢기를 했다는 것.
심판협의회는 즉각 타노스 코치의 행동을 인종차별로 규정하고, 강력 항의했다. 빠르게 성명서를 발표해 "심판 개인에 대한 모욕을 넘어, 축구계 전체의 윤리 및 인권 존중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전북과 타노스 코치는 제대로 보라는 항의성 제스처였을 뿐 차별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상벌위의 판단은 인종차별이었다. 검지 손가락을 눈의 중앙에 댔다가 가장자리로 당기면서 눈을 '얇게' 뜨는 모습이 보이며 이러한 제스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특정 인종의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로 통용되는 '슬랜트아이(slant-eye)'라는 것. 이미 여러 차례 FIFA 징계를 받은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상벌위는 '특정 행위에 대한 평가는 그 행위자가 주장하는 본인의 의도보다는 외부에 표출된 행위가 보편적으로 갖는 의미를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타노스 코치가 해당 행동 전후로 욕설과 함께 'racista(인종차별자)'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쓴 점도 정황 근거로 제시됐다. 결국 그는 출장정지 5경기와 제재금 2000만 원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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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여론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타노스 코치의 제스처가 분명 오해를 살 수 있던 건 맞지만, 눈을 찢는 행위처럼 보이진 않기 때문. 눈 가장자리에 손을 갖다대는 건 국내외에서 항의나 집중의 의미로 종종 쓰이는 제스처다.
결국 권위적인 심판계가 만든 또 한 명의 희생양이 아니냐는 비판이 뜨겁다. 타노스 코치가 과도하게 항의한 건 맞지만, 축구계 전반에 깔려 있는 심판들에 대한 불신이 자초한 결과다. K리그는 특히 올 시즌 오심이 부쩍 늘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8건에서 올해 79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전북도 피해가지 못했다. 제주와 경기에서 전진우가 명백히 상대 수비에게 밟혀 넘어졌지만, 페널티킥이 선언되지 않았다. 심지어 VOR에서도 그냥 넘어갔다. 포옛 감독은 경기 후 자신들이 외국인이라 차별받는다는 뉘앙스의 항의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가 삭제해 징계를 받았다. 물론 결과는 오심이 맞았다.
타노스 코치의 racista(인종차별자) 발언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자신이 인종차별 가해자가 아니라 인종차별 수준의 판정 피해를 받고 있다는 항의로 봐야 한다. 스페인어에 능통한 이승우는 "Racista 역시 스페인어 표현이다. 이 단어는 특정 심판 개인을 향한 인종적 표현이 아니라, 우리 팀이 불리한 판정을 받고 있다는 상황적 표현"이라며 "의도와 맥락을 무시한 채 단어만 떼어서 판단하는 것은 사실과 너무 큰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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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해자가 된 타노스 코치와 전북 측은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 물론 인종차별 판결이 뒤집힐 거라 크게 기대하긴 어렵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분위기다. 이제 공은 다시 심판진과 상벌위로 넘어간 상황.
사실 심판들도 상벌위의 결정에 절대 만족하지 못할 거라 믿는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타노스 코치를 인종차별자로 규정 짓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강경 대응을 예고한 만큼 출장정지 5경기와 제재금 2000만 원이라는 '솜방망이 징계'에 만족할 리가 없다. 중대한 범죄 행위인 인종차별을 당했으니 더 큰 징계를 바라고 있을 거다.
심판협의회의 다음 행보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그들은 피해자가 됐고, 타노스 코치는 가해자가 됐으나 아직 심판협의회가 외쳤던 ▲해당 코치 및 소속 구단에 대한 즉각적인 징계 절차 착수 및 결과 공개 ▲피해 심판에 대한 공식 사과 및 보호 조치 시행 ▲향후 모든 구단 및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윤리 교육 강화 프로그램 마련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앞서 심판협의회는 "심판은 경기의 공정성과 질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심판에 대한 인종차별적 언행은 단순한 개인 비하가 아니라, 한국프로축구의 품격과 공정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노스 코치를 향한 징계는 수위가 낮은 만큼 이대로 싸움을 멈출 리가 없다. 불과 경기 나흘 뒤에 예고했던 대로 FIFA 등 관련 기관 제소 및 행정적 조치도 곧 뒤따라 올 것이로 보인다. 과연 FIFA는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