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신경 쓰는 단 하나의 ‘맞춤형 인공지능(AI) 반도체’ 회사, 구글이 꿈틀댄다. 10년 간 꾸준히 개선해 온 텐서처리장치(TPU) 최신 제품이 메타·앤스로픽 등 거대 고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새 AI 모델 ‘제미나이3’가 받은 호평까지 더해, 구글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지난 한 달 새 20% 이상 올랐고 시가총액 4조 달러가 코 앞이다.
AI 반도체 절대 강자 엔비디아의 태도도 달라졌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맞춤형 칩(ASIC)들은 1년 뒤 상황을 못 보고 있고, 구글은 존경할 만하다”고 훈수를 두던 여유는 사라지고, 엔비디아 공식 계정에는 “구글보다 우리가 한 세대 앞서 있다”는 해명이 올라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25일(현지시간) 엔비디아는 자사 X 공식 계정에 “계속 구글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면서 “엔비디아는 업계보다 한 세대 앞서 있다. 특정 기능에 맞춰 설계된 ASIC보다 성능·다용성·대체성이 훨씬 뛰어나다”라고 적었다. 그래픽처리장치(GPU)로 AI 가속기 시장 95%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특정 칩을 거론하며 ‘우리가 낫다’라고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이날 “메타가 2027년 자사 데이터센터에 구글 TPU 도입을 검토한다”는 미국 매체 디인포메이션 보도에 미국 증시가 반응한 후 나왔다. 이날 알파벳 주가는 1.62% 오른 반면 엔비디아는 2.59% 하락했다. 엔비디아 외 새로운 AI 주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S&P500(+0.91%)과 다우존스30산업지수(+1.43%) 등 뉴욕증시 주요 지수와 나스닥(+0.67%)은 강세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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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대국’ 그후 10년…7세대 진화한 ‘TPU’ 호평
TPU는 구글이 지난 2016년 처음 공개한 자체 개발 AI 가속기다. 그해 이세돌과 대국한 알파고 개발에 TPU 1세대가 쓰였다. 구글이 브로드컴과 함께 설계해 TSMC가 생산했다. 이후 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도 각자 ASIC 개발에 나섰다. 자사 AI 연산에 꼭 맞는 칩을 개발해 가동 비용을 줄이는 한편, 엔비디아와 GPU 구매 시 가격 협상력도 가질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코웃음을 쳐 왔다. 젠슨 황 CEO는 지난 9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AI 칩 시장이 크다고 후발 주자의 몫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일찌감치 TPU를 시작한 구글은 다소 특별하다”라고 견제했다. “구글은 지금도 우리 GPU를 엄청나게 사고 있다”는 말도 함께.
구글은 TPU를 내부에서 쓰고, 일부 클라우드에만 대여해왔다. 그런데 올해 나온 7세대 TPU 성능이 주목 받았고, 지난달 말 AI 서비스 ‘클로드’ 개발사 앤스로픽은 “최대 100만 개 TPU를 포함한 구글 클라우드 활용을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적극 대응에 나섰다. 지난 19일 실적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젠슨 황 CEO는 “다른 제품 써봤다가 다시 돌아오는 고객이 늘고 있다”라며 “데이터 센터에 무작정 ASIC을 설치한다면, 수요와 다양성, 유연성은 누가 보장하느냐?”고 반문했다.
AI 인프라 구축에는 칩뿐 아니라 네트워크와 규모 확장 기술이 중요한데 그걸 다 갖춘 회사는 엔비디아뿐이며, 맞춤형 ASIC을 많이 샀다가 AI 모델·기술이 바뀌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거다. 예컨대 ASIC은 ‘특화된 벽돌’인데, 엔비디아는 ‘범용 벽돌’을 만들 뿐 아니라 전기·소방·인테리어·편의시설까지 아파트 단지를 통째로 지어주는 종합건설사라 애당초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