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인 이상일(51·아래 사진) 감독의 영화 ‘국보’가 역대 일본 실사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영화사 미디어캐슬에 따르면, 지난 6월 초 일본에서 개봉한 ‘국보’는 지난 24일까지 흥행 수익 173억 7739만엔(약 1634억원)을 기록해, 2003년 ‘춤추는 대수사선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의 기록(173억 5000만엔)을 넘어섰다.
22년 만에 일본 실사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지금까지 1231만 명의 관객을 모은 ‘국보’는 애니메이션, 외화를 포함한 전체 영화 흥행 순위에선 11위에 올랐다.
‘국보’는 일본 전통연극 가부키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온나가타(여성 역할을 연기하는 남자 배우)로 활동하는 기쿠오(요시자와 료)와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 두 남자가 주인공이다. 천부적 재능을 가졌지만 가부키 혈통이 아닌 기쿠오, 피는 이어 받았지만기쿠오만큼의 재능은 없었던 슌스케. 서로를 뛰어넘어 최고의 온나가타가 되려 했던 둘의 좌절과 영광의 드라마가 처절하고 숭고하게 그려진다. 전통 예술을 소재로 한 3시간 분량의 영화여서 개봉 초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며 관객이 급증했다. 영화 흥행 덕분에 가부키 인기가 살아나기도 했다.
이상일 감독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 한국인 3세로, ‘악인’, ‘용서받지 못한 자’, ‘분노’, ‘유랑의 달’ 등의 화제작을 만들었다. ‘국보’는 ‘악인’, ‘분노’에 이어 요시다 슈이치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세 번째 작품이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돼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내년 3월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 부문에 일본 대표로 출품됐다.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임에도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내 뿌리는 한국”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13일 내한 기자간담회에선 “‘국보’에도 경계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이 투영돼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혈통이 아닌, 외부에서 온 기쿠오가 가부키라는 폐쇄적인 세계에 들어간다는 점은 태생에서 오는 내 정체성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면서다.
‘유랑의 달’에서 홍경표 촬영감독과 호흡을 맞춘 이 감독은 ‘파친코 시즌2’(Apple TV+) 연출에 참여해 김민하·이민호·윤여정 배우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국보’는 한국에선 19일 개봉해 7만2000명(26일 현재)의 관객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