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전공이 다양한 큰 대학에 가고 싶어요. 취업이 잘 되는 대학이면 좋겠어요.”
서울의 한 고교 3학년 박선민(가명)양은 진학하고 싶은 대학을 묻는 말에 건국대·중앙대 등을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3일 수능을 치른 박양은 “학생 수도 많고, 캠퍼스가 서울에 있는 학교가 더 마음이 간다”며 “지역에도 좋은 대학이 많다고 들었지만 솔직히 통학 거리, 캠퍼스 분위기, 인턴 기회 등을 생각하면 선뜻 선택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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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선택 폭 넓고 취업 지원 탄탄한 인서울대 선호”
캠퍼스 입지와 취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고교생이 늘면서 대학 선호도의 지형도 바뀌고 있다. 2025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평판도 설문 결과(총 2400명 대상) 고교생, 학부모, 기업 인사담당자 모두 '선호하는 대학'을 서울대·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 순으로 꼽았다. 교사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순이다.
5위부터는 학생들과 기성세대의 생각이 다소 갈렸다. 학부모·교사 설문에선 KAIST, 기업 인사담당자 조사에선 한양대(서울)가 5위로 꼽혔지만, 고교생 설문에선 건국대(서울)가 5위였다. 건국대는 학부모·교사·기업 대상 설문에선 각각 10위, 16위, 13위였다. 고교생 선호대학 6위인 경희대는 학부모 14위, 교사·기업은 각각 10위였다. 동국대(서울, 고교생 8위, 교사 22위), 세종대(고교생 15위, 교사 39위), 가천대(고교생 16, 기업 49위)도 ‘학생들이 어른보다 높게' 평가한 대학이었다.
이는 학교 소재지, 대학의 전공 다양성, 진로 지원을 중시하는 고교생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대학 선택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를 묻자 고교생의 32.9%는 ‘취업률·진로 지원’이라고 했다. 또한 위치·생활환경(11.8%)을 장학금·학비(7.3%)보다 우선한 학생이 많았다. 고2 이재훈(가명)군은 “아직 적성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취업도 어렵다고 하니 전공 선택의 폭이 넓고 취업 지원이 탄탄한 대학에 관심이 간다"며 “특히 최근 무전공(전공자율선택제) 입학이 늘면서 여러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대학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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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좋아하는 특성화대, 학생들은 ‘그닥’
이런 인식은 지역에 소재한 이공계 특성화 대학에 대한 상대적으로 낮은 선호도에서도 드러난다. 학부모·교사·기업 설문에서는 KAIST·POSTECH·UNIST가 모두 상위 20위권에 포함됐지만, 고교생 설문에선 POSTECH 26위, KAIST 27위에 머물렀다. KAIST의 한 교수는 “수도권 쏠림이 심해지면서 대학이 아무리 좋아도 인재를 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의대·종합대를 선호하는 학생이 많아진 것도 원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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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고교생은 반대가 많아
이런 인식은 정부 정책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주는 듯했다. ‘지역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해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해 기업·교사·학부모의 절반가량(53.5%)은 찬성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고교생 사이에선 반대(40.9%)가 찬성(38.1%)보다 많았다. 교사의 54.8%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수도권 쏠림 완화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지만, 고교생 사이에선 “효과가 없을 것”(36.3%)이란 응답이 “효과가 있을 것”(33.3%)이란 응답보다 많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지역 국립대 진학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물음에 어른(학부모·교사) 절반 이상(51.8%)이 “그럴 것 같다”고 답했다. 반면 고교생 중 긍정 의견은 39.3%에 그쳤고, 진학이 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30%)이 어른(21.6%)보다 많았다.
조사를 시행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R&R) 정종원 본부장은 “이번 조사 결과 ‘선호 대학’의 기준이 세대별로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대학·정책 당국이 학생들의 실제 선택 기준을 더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