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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일, 60조원 '잠수함 대전'…이기면 '방산 4강' 보인다

중앙일보

2025.11.26 12:00 2025.11.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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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거스 탑시 캐나다 해군사령관과 강동구 잠수함사령관이 지난달 31일 도산안창호급 잠수함(SS-III, 3,000t급)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해군
폴란드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자 선정에서 한국이 최종 탈락한 가운데 정부가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에서 독일을 꺾기 위한 ‘국가 총력전’에 돌입했다. 양국 모두 폴란드 사업을 놓친 만큼 규모가 더 큰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설욕할 필요성이 커졌다. 세계 방산 수출 5위, 2차 세계대전 당시 유(U)보트 수백 정을 찍어낸 ‘잠수함 강국’ 독일은 아예 완제품을 제공하겠다는 통 큰 제안을 하고 나섰고, 한국은 1년에 잠수함 1척씩 공급하겠다는 주특기 ‘속도전’으로 맞붙고 있다.

26일 복수의 군과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독일은 캐나다에 과감한 ‘갭필러(Gap Filler)’ 방식을 제안했다. 구형과 신형 사이의 제작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아예 완제품을 주겠다는 식이다. 독일 TKMS(옛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는 2028년 자국이 도입할 새 잠수함을 캐나다에 대신 넘기겠다고 했다. 독일은 현재 노르웨이와 2500t급 스텔스 디젤 잠수함 212CD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데, 2028년부터 6척을 순차적으로 도입한다. 이 중 독일이 가져가기로 한 3번 잠수함을 캐나다에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에 한국은 강점인 빠른 납기 달성률을 내세워 ‘1년에 1척씩 찍어내기’로 맞서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는 내년에 캐나다의 수주 계약을 체결하면 6년 이내에 첫 납품을 마치겠다고 강조한다. 2032년 1번함을 내놓은 뒤 2035년까지 3000t급 장보고-Ⅲ(KSS-Ⅲ) 4척을 인도할 계획이다. 최종적으로는 2043년에 12번함까지, 연 1척씩 납품한다는 구상이다.

캐나다는 왕립 해군이 보유한 2400t급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2030년대 중반까지 최대 3000t급 신규 디젤 잠수함 12척으로 대체 획득할 계획이다. 도입 뒤 30년간 추후 유지·보수·정비(MRO) 비용까지 합치면 최대 600억 캐나다달러(약 60조원)가 소요될 것으로 캐나다 국방부는 추산한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최종 계약 체결자가 정해질 것으로 방산업계는 보고 있다.

독일은 현재 노르웨이와 공동으로 2500t급 스텔스 디젤 잠수함 212CD를 개발하고 있는데 이중 독일 몫을 캐나다에 넘길 전략이다. 사진 TKMS


수주 땐 ‘방산 4강’ 도약 발판

독일을 함정 수주전에서 꺾는다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해군력 증강 사업에서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관문을 넘어선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잠수함 대전’에서 승기를 잡으면, 독일을 제물 삼아 글로벌 ‘방산 4강’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구상을 정부가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세계 방산 시장에서 10위권이다.

앞서 양국은 폴란드 해군이 함정 현대화를 위해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오르카 프로젝트에서도 맞붙었으나, 승자는 스웨덴이었다. 로이터통신은 26일(현지시간) 폴란드 정부가 내각회의 뒤 신형 잠수함 사업자로 스웨덴 방산업체 사브를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오르카 프로젝트의 규모는 추후 MRO까지 더하면 총 사업비 약 54억달러(8조원), 30년 유지 운용비까지 더하면 20조원으로 추산됐다.
한화오션이 캐나다에 제안한 장보고-Ⅲ 배치-Ⅱ잠수함은 3주 이상 수중 작전이 가능하고 최대 7000해리(약 1만2900㎞)를 운항할 수 있다. 사진 한화오션

정부는 이를 수주하기 위해 폴란드 측에 올해 말 퇴역을 앞둔 장보고함(SS-Ⅰ,1200t급)을 무상 양도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범부처 카드’를 동원했다. 최근 한국과 폴란드의 고위 당국자 회담에선 폴란드산 소고기 문제까지 테이블에 올랐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가 폴란드 고위 당국자에게 “폴란드가 한국에 소고기 수출을 희망하고 있다는 점을 한국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고배를 마시게 됐다.

그럼에도 오르카 프로젝트에 참여해 나토 회원국에 한국의 잠수함 건조 능력을 선보인 건 성과로 볼 수 있다. 막판까지 경쟁국들과 팽팽한 접전을 벌인 건 한국이 과거 ‘잠수함 산파’였던 독일과 견줄만한 기술을 갖췄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97년 5월 장보고함이 하와이 파견훈련을 통해 1만 마일 단독항해에 성공하며 장거리 잠항과 원해 작전능력을 세계에 입증했다. 사진 해군
1987년 대우중공업(현 한화오션)은 장보고함을 수주하면서 직원 100여명을 독일 하데베(HDW) 조선소로 보내 직무교육을 받게 했다. 그 결과 1200t급 2번 함부터는 독일 설계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8척을 만들 수 있었다. 2021년에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건조한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이 취역했다. 당시 독일에 파견된 정한구 한화오션 기원(생산직 최고감독자)은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한국의 잠수함 건조기술 수준이 높아졌다”며 “독일보다 빨리 잠수함을 만들어 인도할 수 있고 수주단가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캐나다에도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제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한국 측은 빠른 납기와 함께 캐나다의 약점인 제조업 분야에 산업 협력 등으로 기여하는 방안을 내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우위 속, 한국 부상

한화오션은 캐나다 최대 방산 전시회 'CANSEC'에서 현지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고 지난 5월 30일 밝혔다. 마이클 쿨터 한화 글로벌디펜스 CEO(왼쪽)와 리치 포스터 L3 해리스 맵스 부사장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한화오션
관련 업계에선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서는 작전요구성능(ROC)과는 별개로 해당국과의 전략적 협력 수준도 판단의 주요 요소가 될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다. 최근 방산 시장 활성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 등 정세 변화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크다. 각국이 자강 측면에서 첨단 무기체계 도입을 서두르는 가운데 무기 수입은 유사시 해당 국가와의 안보 협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나토 회원국에 잠수함을 다수 공급한 독일이 수주전에서 우위에 있다는 외신의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 독일 잠수함은 연합 작전에서 상호 운용성도 이미 검증됐다. 반면 한국은 나토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안보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다. 또 한·미 정상이 합의한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도입, 한국 내 미군 전투함 건조 등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의 군사 전략적 가치는 크게 높아진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국내 소식통은 “잠수함은 독일이 ‘넘사벽’이라고 보지만 디젤 부문에서는 한국 외에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며 “한국 측이 수주전에서 내세울 강점이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심석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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