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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고객(?) 이치로, 새 글러브 6개를 보자마자 모두 퇴짜…유난히 까탈스러운 취향에 제조사 전전긍긍

OSEN

2025.11.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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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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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 제작자 기시모토, 올 11월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 수여

[OSEN=백종인 객원기자] 매년 11월이면 일본 정부는 훈장 수여식을 갖는다. 각계의 기여도가 큰 인물을 선정해 포상하는 자리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상자가 발표됐다. 그중 눈길을 끄는 이름이 있다. 기시모토 고사쿠(68)라는 인물이다. 야구 글러브에 평생을 바친 장인(匠人)이다.

미국, 일본 할 것 없다. 전세계 200명이 넘는 유명 선수가 그의 고객이(었)다. MLB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스즈키 이치로(52) 역시 그중 하나다. 둘 사이의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2006년이다. 스포츠용품 브랜드 M사가 고민에 빠졌다. (야구) 글러브 생산 라인의 책임자가 은퇴를 발표한 탓이다. 정부로부터 명인 칭호까지 받은 쓰보타 노부유키(2022년 타계)라는 숙련공이다.

당시 73세였다. 나이도 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딱 하나 문제가 있다. 이치로의 글러브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하지만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기피 인물이기도 하다. 오직 쓰보타만이 그의 구미를 맞춘다.

어쩔 수 없다. 후계자가 지목됐다. 바로 기시모토였다. 그때부터다. 몇 달 동안 오직 그 일에만 매달렸다. 심혈을 기울여 50개를 만들었다. 그중 6개를 엄선한다. 그리고 시애틀행 비행기를 탄다. 고객의 검수를 받기 위해서다.

매리너스 구장에서 이치로를 만났다. 가지고 간 글러브를 내놨다. 이를테면 검수 작업이다. VIP 고객은 이리저리 6개를 살핀다. 그런데 곧바로 얼굴빛이 변한다. “이건 아닌데.” “이것도 별로.” “음~.”

잠시 끼어 보고는 이내 벗어 버린다. 손에 붙지 않는다며 못마땅한 표정이다. 심지어 캐치볼조차 해보지 않는다. 퇴짜 맞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후계자는 맥이 풀렸다. “억울하다고 할까, 아니면 한심하다고 할까.” 당시에도 30년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그런 숙련공의 자존심이 완전히 짓밟혔다. 왕복 30시간 가까운 출장은 헛걸음이 됐다.

[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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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M사의 책임자 교체는 무기한 연기됐다. 쓰보타 명인의 은퇴도 미뤄졌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회사의 운명이 걸린 일이다.

“이치로 씨가 쓰는 것은 재료 선정부터 특별하다. 반드시 미국산 소만 써야 한다. 생후 6개월 미만에 거세된 수컷이 적당하다. 그것도 2살이 넘어가면 안 된다. 거기서 머리 뒤쪽 부분 가죽을 재단한다. 글러브 1개를 만드는데 한 마리, 어떤 경우는 두 마리가 필요하다.” (기시모토 고사쿠)

이건 그래도 좀 낫다. 심지어 상상력도 필요하다. TV를 열심히 봐야 한다. 이치로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핀다. 어떤 동작으로, 어떻게 공을 잡는지. 그 손가락과 손의 느낌을 머릿속에 그린다.

VIP 고객은 까다롭다. 철저하게 가볍고, 부드러운 것을 선호한다. 540~550그램을 정도가 적당하다. 그러려면 1.1밀리미터 이하여야 한다. 보통의 절반도 안 되는 정도다. 그래서 제작이 더 어렵다.

실제 너무 가벼운 글러브는 곤란하다. 특히 메이저리그는 타구가 강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가죽의 무게나 두꺼움이 필요하다. 그걸 이겨내는 게 이치로의 기술력이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드디어 완성품이 제작됐다. 다시 시험대에 선다. 이번에는 좀 꼼꼼하게 살핀다. 만져보고, 손에 끼어 본다. 가볍게 공을 튀겨 보기도 한다.

드디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이건 좀 가능성이 있군.” 이치로의 끄덕임이다.

그때가 2007년 5월이다. “손에 좀 익히고, 7월 올스타전 때 한번 써보겠다.” 즉, 후반기부터는 새 글러브를 쓰겠다는 말이다. 1년이 걸렸다. M사의 (생산라인) 후계 작업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MLB 명예의 전당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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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이다. 이치로가 또 골드글러브를 받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감히 경쟁 상대가 없다. 벌써 7년째 연속 수상이다.

소감이 인상적이다. 이런 말을 남겼다.

“올해는 특별히 많이 긴장했다. 만약 내가 이 상을 받지 못했다면, 새로 글러브를 만들어준 기시모토 선생이 자기 탓이라고 크게 낙담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늘 최선을 다해야 했다.”

/ [email protected]


백종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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