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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절도' 항소심서 무죄…"간식 관행" 동료들 진술이 결정적

중앙일보

2025.11.26 19:40 2025.11.2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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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이미지. 김준희 기자


재판부 “범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피해 금액 1050원으로 재판까지 간 ‘초코파이 절도 사건’ 피고인 A씨(41)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도형)는 27일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이 피해자 승낙을 얻지 않았더라도, 피해자 의사에 반해 이 사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던 초코파이 등을 꺼내 간다는 범의(범죄 행위임을 알고서도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벌금 5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평소 사무실 간식을 가져다 먹는 관행이 있었다”는 회사 동료 수십 명의 진술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A씨는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게 됐다.

물류회사 협력업체에서 보안 업무를 맡은 A씨는 지난해 1월 18일 오전 4시 6분쯤 전북 완주군 물류회사 사무실 냉장고에서 초코파이(450원)와 커스터드(600원)를 꺼내 먹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만원을 선고받았다. 애초 전주지검은 벌금 50만원에 약식 기소(공판을 열지 않고 법원에 서면 심리를 청구하는 절차)했지만, A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A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지만, 검찰은 “보안 업무와 무관한 사무실로 들어가 권한 없이 음식을 가져간 것은 절도가 명백하다”고 맞섰다.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초코파이와 커스터드. 김준희 기자



檢 “절도 명백”…시민위 권고로 ‘선고유예’ 구형

특히 검찰은 A씨가 2019년 1월 한 클럽에서 30대 여성의 140만원짜리 휴대전화를 훔친 혐의(절도)로 선고유예를 받은 것과 과거 음주 상태에서 경찰 승합차를 운전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자동차 등 사용절도)로 벌금형(500만원)을 받은 사실을 지적하며 “10년간 두 차례 동종 전력이 있는데도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피해 금액이 극히 소액인 점 ▶유죄가 확정되면 경비업법상 A씨가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선처 의미로 선고를 유예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는 지난달 27일 검찰시민위원회의 “선고유예 구형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따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평소 탁송 기사들이 ‘냉장고 간식은 먹어도 된다’고 했다”는 A씨 주장에 무게를 뒀다. “탁송 기사들은 보안업체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종종 본인들을 위해 마련된 간식을 건네주기도 했다” “다른 탁송 기사들로부터 ‘보안업체 직원에게 간식을 직접 건네줄 시간이 없어 사무실에 마련된 간식을 가져다 먹으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등 A씨 소속 보안업체 동료 39명과 탁송 기사 등의 진술을 근거로 삼았다.

27일 오전 전주지법에서 열린 '초코파이 절도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가 벌금 5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한 직후 이민경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이 취재진에게 "비정상이 정상이 된 당연한 판결"이라며 반기고 있다. 김준희 기자 '초코파이 절도 사건' 항소심 무죄를 이끈 박정교 변호사가 27일 전주지법 1층 로비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줘 결과가 잘 나온 거라 생각해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민주노총 “비정상이 정상이 된 판결” 환영

재판부는 또 “초코파이 등이 들어 있던 냉장고를 포함한 사무 공간 접근이 일절 금지된다고 볼 만한 별다른 표지도 없다”고 봤다. “사무실이 사무 공간과 대기 공간이 책상을 통해 분리돼 있긴 하나, 책상과 냉장고 사이엔 상당한 간격이 있어 그 부분이 통로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탁송 기사와 보안업체 직원의 근무 형태와 업무 내용 등을 토대로 “설령 탁송 기사들에게 냉장고 내 물품을 처분할 권한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으로서는 새벽 시간에 근무하던 탁송 기사들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던 간식을 제공할 권한이 있다고 충분히 착오(착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A씨 측은 줄곧 “이 사건은 노조 탄압에 의한 표적 고소”라고 주장했다. 같은 보안업체 동료 한 명도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서다. 선고 직후 이민경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은 “비정상이 정상이 된 당연한 판결”이라고 반기면서 “그동안 사측이 노동자와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법을 오용했다”고 했다. A씨 항소심 무죄를 이끈 박정교 변호사는 “(피고인은) 새벽에 배가 고파 초코파이를 먹은 것 때문에 재판까지 받게 된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을 창피해 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초를 겪었다”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줘 결과가 잘 나온 거라 생각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주지검 측은 “판결문을 본 뒤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김준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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