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백일섭은 OSEN 과의 통화에서 故 이순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고 전하며 "훌륭하신 분이었다. 50년 큰 형님으로 모시면서 많이 배웠다. 오래 살다 보니 성품도 많이 닮아가고. 저도 많이 배웠다"라고 운을 뗐다.
이순재는 지난 25일 세상을 떠났다. 1934년 함경북도 화령에서 태어난 故이순재는 서울대 철학과 등을 거쳐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되면서 한국 방송 역사와 함께 한 故이순재는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삼김시대’,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사랑이 뭐길래’, ‘사모곡’, ‘인목대비’, ‘상노’, ‘독립문’, ‘허준’, ‘상도’, ‘이산’,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뚫고 하이킥’, ‘개소리’ 등에 출연했으며, 연극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세일즈맨의 죽음’, ‘리어왕’,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했다.
칠순에는 시트콤으로, 구순에는 연극 무대에 서며 나이를 잊은 연기 열정을 보여줬고, 최근까지도 가천대학교 석좌교수로 후배 양성에 힘써왔던 이순재는 지난해 10월 건강 이상으로 출연 중이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중도 하차한 뒤 건강 회복에 힘써왔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사진]OSEN DB.
백일섭은 "기억이 나는 게, 제가 '95살까지만 하시죠' 했었다. (이순재도) '그래'라고 하셔서, '저도 형 따라서 95살까지 하겠다'라고 했는데. 그걸 4년을 못 넘기고"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고인에 대해 "툭 털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사실 예감을 하긴 했다. KBS 시상식서 대상 타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자리는 아닌데. 어찌 보면 그게 유언이 된 것 같다"라며 지난해 방송된 KBS2 드라마 '개소리'를 통해 '2024 KBS 연기대상'에서 생애 첫 '대상'을 수상한 순간을 언급했다. 당시 이순재는 "늦은 시간까지 와서 격려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 집안에서 보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 감사합니다"라며 끝내 감격의 눈물을 흘린 바.
이와 관련해 백일섭은 "그때 예감을 하긴 했다. 몸도 많이 안 좋아 보이시고. 사실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 (왠만하면) 누구에게 부축을 받을 사람도 아니었는데"라며 "(아픈 와중에도) 연극하신다고 해서 연습도 하고. 아픈데 어떻게든 해보려고. 무대에서 돌아가시려고 생각하셨나 보다"라고 전했다.
또한 백일섭은 "일 욕심이 원체 많으신 분이었다"라며 "요즘엔 대본을 다 핸드폰에 담지 않나. 형님은 아날로그 한 분이라. 노트를 들고 다니는데, 빡빡하더라. 빈칸이 없었다. 한 번은 '왜 여태까지 일을 하나'라고 물었다. 연극을 하면서도 다른 연극 준비를 하고 계셨으니까. 일 욕심이 정말 많으셨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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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백일섭은 "처음에 조문 갔을 때는, 인사만 하고 소주 한 잔만 먹고 나왔다. 그런데 도저히 집으로 갈 수가 없어서 다시 돌아갔다. 가서 영정 앞에 앉아서 얼굴 보고 앉아 '형님, 일도 더 못하고 가시니 얼마나 억울하시오'라고 하니, 옆에 있던 (이순재의) 아들이 '(생전에) 많이 억울해 하셨다'라고 하더라. 나이 먹어서 (내가) 눈물 흘리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인사를 하고 나왔다"라고 말해 먹먹함을 자아냈다.
그는 "10년 전 '꽃할배'를 할 때 내가 70대 초반이고, 순재 형이 지금 내 나이(80세)였다. 그런데도 그렇게 훨훨 날아다니셨다. 생전에 술 담배도 안 하셨으니 가능하셨을 거다. 밥도 조금씩 드시던 분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푹 쉬고, 밥 더 드셨으면 더 오래 사셨을 지도 모르겠다"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자신 역시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백일섭은 '오래오래 건강하게 방송에서 활약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당부에 "저도 순재 형님 나이까지만이라도 했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직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영결식과 발인식을 마친 고 이순재의 운구 행렬은 장지인 이천 에덴낙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