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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함성이 들리는 한 메치고 또 메치겠다" 청각장애 유도 김민석

중앙일보

2025.11.27 00:31 2025.11.2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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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유도선수 김민석은 사상 최초로 일반과 청각장애인 모두에서 국가대표 타이틀을 단다는 각오다. 김성룡 기자
"적막 속에서 싸우는 저에게는 우승해야만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있어요. 바로 관중석 함성이에요. 제 귀에는 수백 미터 밖에서 외치는 것처럼 희미하게 들리지만, 그것 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해요. 지난 4년간 고된 훈련을 견딘 이유죠.”

청각장애 유도 국가대표 김민석(30·포항시청)은 데플림픽(청각장애인 올림픽) 챔피언으로 우뚝 선 소감을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정확한 말투로 설명했다. 그는 지난 1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25 도쿄 데플림픽 유도 남자 90㎏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통산 두 번째(2017·25년) 금메달이다. 직전 2021년 카시아스두술(브라질) 대회 땐 은메달을 따냈다.

데플림픽은 청각장애(deaf)와 올림픽(Olympics)을 합친 용어로 전 세계 청각장애 운동선수들이 4년마다 경쟁하는 대회다. 데플림픽 종목 유도는 '사일런스 유도'로도 불린다. 선수는 보청기를 낄 수 없다. 오직 심판의 수신호 의지해 판정을 확인한다.

이천 장애인선수촌 유도장에서 밧줄 타기 훈련하는 김민석. 사진 포항시청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체육관에서 만난 김민석은 "최근 내 숨소리조차 안 들릴 만큼 청력이 악화했다. 보청기를 끼고도 '다시 말씀해 주세요'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면서 "소음이든 아니든 '소리' 그 자체 만으로도 내겐 값진데, 금메달 순간 잠시나마 크고 또렷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민석은 원래 비장애인 유도 81㎏급 유망주였다. 원광고(전북) 시절부터 동의대 1학년(2013년) 때까지 출전하는 대회마다 입상했다. 당시 올림픽(2012년)을 제패한 81㎏급 국가대표 간판 김재범의 후계자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대학 3학년 때인 2015년 후천성 난청으로 청각을 잃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훈련 중 귀 부위가 매트나 상대에 부딪혀 강한 충격을 여러 차례 받은 탓이다.

도복을 갖춰 입고 포즈를 취한 김민석. 김성룡 기자
코치 박스에서 감독이 외치는 작전이 더는 들리지 않자, 김민석은 300만원을 모아 보청기를 샀다. 그는 "보청기를 보니 앞이 깜깜했다. '이 상태로 유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진로를 놓고 고민할 무렵 "청각장애 유도에 도전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 김민석은 청각장애 유도 국가대표에 도전했고 2015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때부턴 일반 대회와 장애인 대회를 병행했다. 보통 선수보다 자주 감량하고 두 배 바쁜 살인 스케줄이다. 김민석은 선수촌에 있을 땐 새벽-오전-오후-저녁(이상 각 2시간)으로 이어지는 하루 네 차례 지옥 훈련을 자청해 소화한다. 소속팀에선 2024 파리올림픽 동메달리스트(81㎏급) 이준환 등 실력자들과 경쟁한다.

데플림픽 금메달을 들어보이는 김민석. 사진 김민석
포항시청은 국내 실업팀 중 유일하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뛰는 팀이다. 노력은 성적으로 돌아왔다. 청각장애인 국제대회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일반 대회인 청풍기전국대회에서도 지난해 3위를 차지했다.

김민석의 다음 목표는 일반 선수들과 경쟁해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그는 "내년 8차례 일반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선발전에도 도전하겠다"면서 "의학이 발전하더라도 언젠간 보청기 도움을 받고도 못 듣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최대한 많은 우승을 해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의 함성을 귀와 머리에 담겠다. 최초로 일반-청각장애 유도 국가대표를 겸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민석은 청력이 점점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김성룡 기자



피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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