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기소된 임종헌(66)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심 재판에서 1심 형량과 같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개별 혐의에 대한 유무죄 판단에 대해서는 1심과 항소심 판단이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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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유지, 개별 혐의 유·무죄 뒤집혀
서울고법 형사12-1부(고법판사 홍지영·방웅환·김민아)는 27일 임 전 차장의 항소심 선고기일 재판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비록 개인 이익이 아닌 청와대와 국회의 협력을 얻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는 하나 이는 삼권분립원칙에 기초해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여야 할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며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강제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향후 전개방향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는 등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핵심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등)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판단했다. 재판부는 “본래 법령에서 직권을 부여한 목적을 벗어났다거나 당시 상황에서 필요성·상당성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재항고 사건에서 심의관에게 고용노동부 서류를 대신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메르스 관련 정부의 법적 책임 검토를 지시한 혐의 등 7개 세부 혐의는 유죄가 유지됐다. 사법행정을 위한 현금성 경비 마련을 위해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예산안을 요청하면서 정부에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배임)도 있다.
1심에서 유죄 판결한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행정처의 개입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해명자료를 작성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에 대해 재판부는 “행사할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반대로 1심에서 무죄 선고됐으나 유죄로 뒤집힌 혐의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면 판매를 중지시키기 위해 법적 압박을 검토한 혐의 등이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거 및 운영에 개입한 혐의도 직권남용을 인정했다. 공보관실 운영비 편성에 대해서는 1심과 달리 특정범죄가중법상 국고손실 혐의도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은 선고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아직 재판 중이기 때문에 재판 관련 말씀은 안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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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는 1심 무죄, 내년 1월 2심 선고
임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며 일선 재판에 개입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 등으로 2018년 11월 구속기소됐다. 5년이 넘는 1심 재판 끝에 지난해 2월 1심에서는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유죄를 받은 법관들 중 가장 높은 형량이다. 앞서 전·현직 판사 14명이 기소됐고 이중 3명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민걸 전 기조실장은 항소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항소심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에 대한 2심 선고는 오는 1월 30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