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스캠(scam·사기) 등 범죄에 연루된 개인 15명과 단체 132개를 독자 제재했다. 범죄의 배후인 프린스그룹 천즈(陳志) 회장을 비롯해 한국인 대학생 사망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이광호 등 중국인 2명도 포함됐다. 초국가 범죄에 연루된 이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독자 제재를 한 건 처음이다.
정부는 27일 "캄보디아 ‘태자단지’와 ‘망고단지’ 등 다수의 우리 국민이 연루·감금된 대규모 스캠단지를 조성하고 운영한 프린스그룹 및 관련된 개인·단체를 제재한다"고 밝혔다. 관련 자금세탁에 관여한 후이원그룹과 자회사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앞서 미국과 영국은 프린스 그룹을 제재했고, 미국 재무부는 후이원그룹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금융기관'으로 지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제재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한국 자체 정보뿐 아니라 미국, 영국의 정보도 공유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미국과 영국은 프린스그룹과 천즈 회장 등을 겨냥해 146건의 제재를 발표했다. 한국인 다수가 피해자인데도 정부 제재 조치는 상대적으로 늦은 데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초국가 조직 범죄에 대응한 한국 최초의 독자제재 조치로서 전례가 없는 만큼 법적 검토와 정보 파악 등 내부절차를 진행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이번 제재 대상에는 이광호뿐 아니라 캄보디아 보하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스캠 조직 총책인 한성호도 포함됐다. 이광호는 강남 학원가 마약 사건의 주범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정부가 대북 제재를 제외한 독자 제재로 중국인을 제재한 건 처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일)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 경찰 당국 간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사기범죄 대응에 공조하는 양해각서(MOU)가 체결되는 등 초국가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한·중 공조가 확대되는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제재에서 앞서 미국과 영국 제재 명단에 있었던 중국인 5명이 제외된 것도 최근 한·중 간 수사 공조 강화 기조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의 제재 리스트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며 “이번에 우리 제재에서 제외된 5명을 포함한 중국 국적 가담자에 대해서는 한·중 공조 차원에서 수사 등 필요한 조치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제재의 근거법으로 '테러자금금지법'을 적용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공중을 협박할 목적이 있거나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개인과 단체를 제재할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공중 협박 행위는 '사람을 체포·감금·약취·유인하거나 인질로 삼는 행위’로 정의되기에 이번 제재에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는 개인·단체는 관계 법규에 따라 가상자산을 포함한 국내 자산동결, 국내 금융거래 제한, 개인의 경우 입국 금지 등의 조치가 부과된다. 다만 이번 제재로 동결되는 국내 자산은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제재 대상 명의의 금융계좌에 있는 수천만 원 정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