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수형 기자] ‘한국 연극·방송계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 고(故) 이순재의 별세 소식 이후,그가 지난해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남긴 말들이 다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 “딴따라 취급받던 시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방영된 ‘유퀴즈’ 238회에 출연한 이순재는 데뷔 68주년을 맞아 처음 생긴 팬클럽 이야기를 꺼내며 웃어 보였다. 당시 그는 “옛날엔 팬클럽이라는 게 없었어. 그런 직업은 그냥 딴따라라고 했지. 배우를 만나도 ‘신성일보다 키가 작네’ 이런 소리나 듣고.”라며 회상, 그 시대의 차별과 편견을 유머로 털어내는 모습은ㅊ평생을 연기로 버텨온 그의 단단함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사진]OSEN DB.
#. “햄릿은 못했지만… 노년에 셰익스피어를 했다”
이순재는 배우로서의 평생 꿈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젊었을 때 햄릿을 못 했다. 햄릿은 영원한 로망이지.맥베스는 덩치가 있어야 하고… 그래서 노년에 셰익스피어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바로 리어왕이었다.”고 말한 것. 그는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대한민국 최고령 ‘리어왕’으로 무대에 서며 연기를 향한 집념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 “배우란 그 나라의 언어다”
무엇보다 이순재가 배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단연 ‘언어’였다.“배우란 그 나라의 언어다. 장단음을 구분해서 읽을 줄 알아야 하고,박사도, 무학도, 시골 사는 분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해.”라며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또, “나 자신을 비하하지 마라. 차근차근 올라가면 된다. 최민식도, 송강호도, 마동석도… 다 그렇게 올라온 거다.나도 뭐든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한 모습.
이순재가 평생 지켜온 배우의 자세, 그리고 후배들에게 남긴 진심 어린 가르침이 고스란히 담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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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가장 행복한 죽음”
이순재는 마지막까지 ‘연기’ 그 자체로 살고 싶어 했다. “가장 행복한 건 공연하다 죽는 거다.무대에서 쓰러지는 죽음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지.”라며 그는 90세를 넘어서도 드라마와 연극, 강의 모두를 놓지 않았고 “정신 없이 뛰었다. 그게 즐거움이고 보람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한편, 이순재는 지난 25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발인은 27일 진행됐으며, 영결식에는 배우 정보석·김영철·하지원 등이 추도사로 참석했다.장지는 이천 에덴낙원이며, 여의도 KBS 별관에는 시민들을 위한 조문 공간도 마련됐다.
‘유퀴즈’ 제작진은 고인을 추모하며 그의 KBS 연기대상 수상소감 일부를 인용했다.“평생 신세 많이 졌습니다, 선생님. 부디 편히 쉬세요.”라는 말이었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무대를 꿈꾸던 배우. 배우를 ‘언어’라 말하며, 자기 확신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던 어른.후배를 따뜻하게 품고, 시대를 이끈 스승.그가 남긴 말들은 한 시대의 배우가 아니라, 한 시대의 ‘선생’이 남긴 유산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