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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함성, 늘 짜릿하다

중앙일보

2025.11.27 07:51 2025.11.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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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데플림픽 유도 남자 90㎏급 우승 직후 환호하는 김민석. 그는 청력을 잃은 뒤 청각장애인 유도 1인자로 거듭났다. [사진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
“적막 속에서 싸우는 저에게는 우승해야만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있어요. 바로 관중석 함성이에요. 제 귀에는 수백 미터 밖에서 외치는 것처럼 희미하게 들리지만, 그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해요. 지난 4년간 고된 훈련을 견딘 이유죠.”

청각장애 유도 국가대표 김민석(30·포항시청)은 데플림픽(청각장애인 올림픽) 챔피언으로 우뚝 선 소감을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정확한 말투로 설명했다.

그는 지난 1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25 도쿄 데플림픽 유도 남자 90㎏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통산 두 번째(2017·25년) 금메달이다. 직전 2021년 카시아스두술(브라질) 대회 땐 은메달을 따냈다. 데플림픽은 청각장애(Deaf)와 올림픽(Olympics)을 합친 용어로, 전 세계 청각장애 운동선수들이 4년마다 경쟁하는 대회다. 데플림픽 종목 유도는 ‘사일런스 유도’로도 불린다. 선수는 보청기를 낄 수 없다. 오직 심판의 수신호 의지해 판정을 확인한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체육관에서 만난 김민석은 “최근 내 숨소리조차 안 들릴 만큼 청력이 악화했다. 보청기를 끼고도 ‘다시 말씀해 주세요’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면서 “소음이든 아니든 ‘소리’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값진데, 금메달 순간 잠시나마 크고 또렷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민석은 원래 비장애인 유도 81㎏급 유망주였다. 원광고(전북) 시절부터 동의대 1학년(2013년) 때까지 출전하는 대회마다 입상했다. 당시 올림픽(2012년)을 제패한 81㎏급 국가대표 간판 김재범의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대학 3학년 때인 2015년 청각을 잃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귀 부위를 매트나 상대에 부딪히며 강한 충격을 여러 차례 받은 탓에 생긴 후천성 난청이었다. 코치 박스에서 감독이 외치는 작전 지시가 더는 들리지 않자, 김민석은 300만원을 모아 보청기를 샀다. 그는 “보청기를 보니 앞이 깜깜했다. ‘이 상태로 유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민석(오른쪽)과 포항시청 석정수 감독. 사진 김민석
진로를 놓고 고민할 무렵 “청각장애 유도에 도전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국가대표에 도전해 2015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민석은 이때부터 일반 대회와 장애인 대회를 병행했다. 보통 선수보다 자주 감량하고 두 배 바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선수촌에 있을 땐 새벽-오전-오후-저녁(이상 각 2시간)으로 이어지는 하루 네 차례 지옥 훈련을 자청해 소화한다. 소속팀에선 2024 파리올림픽 동메달리스트(81㎏급) 이준환 등 실력자들과 경쟁한다. 포항시청은 국내 실업팀 중 유일하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뛰는 팀이다. 석정수 포항시청 감독은 든든한 후원자다. 김민석과 6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다. 김민석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시는 이강덕 포항시장님과 소속팀 석정수 감독님 덕분에 유도에만 집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력은 성적으로 돌아왔다. 청각장애인 국제대회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일반 대회인 청풍기전국대회에서도 지난해 3위를 차지했다. 다음 목표는 일반 선수들과 경쟁해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내년 8차례 일반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고,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선발전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김민석은 “최초로 일반-청각장애 유도 국가대표를 겸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이렇게 다짐했다.

“의학이 발전하더라도, 언젠간 보청기 도움을 받고도 못 듣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최대한 많이 우승해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의 함성을 귀와 머리에 담겠다.”





피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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