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차세대 잠수함을 결정하는 ‘오르카 프로젝트’에서 스웨덴의 사브(SAAB)가 26일(현지시간)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은 불과 6년 전 폴란드 잠수함 수주 사업에 참여하며 납기 달성 불안 문제 등으로 우려를 산 적이 있는데, 폴란드는 되레 ‘빠른 납기’가 강점인 한국을 탈락시키고 스웨덴을 택한 것이다. 여기엔 같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회원국과의 안정적 안보협력을 우선시한 폴란드의 정책 기조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오르카 프로젝트는 폴란드 해군이 함정 현대화를 위해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사업이다. 유지·보수·정비(MRO)까지 더하면 총 사업비가 약 54억달러(8조원)에 이른다. 한국 측은 올해 말 퇴역을 앞둔 장보고함(SS-Ⅰ,1200t급)을 무상 양도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고위 당국자 회담에서 폴란드산 소고기 수입에 긍정적 신호까지 발신했지만, 결국 수주에 이르지 못했다.
이와 관련, 한국은 시종 독일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며 우선순위에 들었지만, 최근 몇 주 사이 스웨덴 사브가 내세운 A26 블레킹급 잠수함이 급부상했다고 한다.
업계에선 일단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고려가 반영된 것이란 의견이 많다. 폴란드와 맞닿아 있는 발트해는 평균 수심이 55m로 바렌츠해(240m), 북해(94m)보다 상대적으로 얕다. 중소형인 A26 블레킹급 잠수함(2000t급)이 작전에서 유리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앞서 폴란드 매체 TVP는 해당 잠수함이 발트해의 얕은 해역에서 작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고 보도했다.
양국이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근접해 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 측은 이번 발표에서 스웨덴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스웨덴 국방부의 기반시설과 장비를 활용하기 용이하다는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웨덴을 한국보다 안정적 군사협력 파트너로 봤을 가능성이 크다. 비동맹 중립노선을 고수해온 스웨덴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토에 가입했다. 사실상 나토의 최전방인 폴란드와 안보 위협 인식을 직접 공유한다는 뜻이다.
스웨덴은 지난해 나토 합동훈련에 폴란드와 함께 참여하면서 상호운용성 검증도 끝냈다. 이에 폴란드는 한국이라는 새 안보협력처를 택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유럽연합(EU)과 나토라는 울타리를 공유하는 국가와 협력하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2019년 자국 잠수함 수주전에서 납기 불안정 등 우려로 스웨덴과의 계약에 이르지 못한 전례에도 폴란드가 스웨덴을 택한 건 안보 협력 등 정치적 판단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3월 EU 집행위원회가 유럽산 무기에 한정해 1500억 유로(약 240조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점도 스웨덴에 유리한 부분이었다. 지난달 말 사브가 폴란드에 제출한 최종 제안서에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와 함께 서명한 공식 지지 서한이 동봉되는 등 막판 영국의 지원사격도 있었다. 스웨덴이 폴란드의 휴대용 대공미사일 시스템, 폴란드가 건조한 라토브니크(ratownik)를 구매하고, 연구·개발(R&D) 등 투자를 약속한 것도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