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2027년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27일 밝혔다. 치매, 심근경색과 같은 운전에 문제가 되는 중대한 질환을 가진 이들이나 고령자 등을 대상으로 운전 적합성 평가를 거쳐 제한된 조건에서만 운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경찰은 야간이나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등의 제한 조건을 설정하고,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설치를 조건에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65세 이상 운전자 141명에게 해당 장치를 지급해 시범 운영한 결과,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가속이 차단되는 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고령자 운전 차량 돌진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경찰 안팎에서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 13일 경기 부천 제일시장에서 60대 트럭 운전자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밟아 상가로 돌진해 4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에서는 70대 택시 기사가 페달을 잘못 밟아 중앙선을 넘어 반대 방향에서 오던 승용차와 충돌했고 20대 일본인 부부와 함께 택시에 타고 있던 생후 9개월 딸이 목숨을 잃었다.
그간 정부는 고위험 운전자 사고 방지 중점 대책으로 ‘면허 자진 반납 제도’을 추진해 왔다. 경찰청에 따르면 정책이 시작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건수는 50만273건이었다. 지난해 기준 만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516만6386명으로 누적 반납률은 약 8.8%다.
하지만 면허 자진 반납 제도만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4만2369건(전체 교통사고 중 21.6%)으로 2020년 3만1072건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이로 인한 사고 사망자도 735명(2022년)→745명(2023년)→761명(2024년)으로 매해 늘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지난 8월 “면허 반납 시 실제 증빙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천안시의 경우엔 2024년 전체 반납자 중 실제 운전자 반납 비율이 16.9%에 그쳤다”며 “이러한 현황으로 비춰볼 때 실제 운전을 하지 않는 분들이 반납하는 경우가 많아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교수는 “고령자 면허 반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운전을 허용하는 대신 조건부 면허를 주는 게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