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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5000명 목숨 앗아간 대역병 그 후…잊혀진 '연결의 힘' [창간기획 대한민국 '트리거60'<55>]

중앙일보

2025.11.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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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대한민국 '트리거60'〈55〉 코로나 팬데믹

2021년 7월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본격화하자 선별 검사 대기 줄이 다시 길어졌다.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연합뉴스]
2020년 1월 20일,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 여성이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뉴스가 훗날 국민 3500만여 명을 감염시키고, 3만50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가는 매머드급 재난의 신호탄이 될 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 달 뒤인 2월, 대구 신천지 집단감염이 터지자 사람들의 불안은 공포로 변했다. 중국인, 신천지 교인, 대구·경북 거주자 등이 곧바로 원망과 경멸의 대상이 됐다. 확진자 ‘동선 공개’와 ‘투명성’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사생활이 무방비로 노출됐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감염자와 밀접 접촉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녀야 했다. 공동체가 오랜 기간 쌓아 올린 신뢰와 결속이 흔들렸다. 2020년 4월 23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 팬데믹은 공중보건의 위기이자 인권의 위기”라고 경고했다.

21세기 들어 감염병은 대유행을 반복해 왔다. 사스(2003년), 신종플루(2009년), 에볼라(2014년), 메르스(2015년)까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 독감, 인구의 3분의 1을 사라지게 한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그리고 고대 아테네를 황폐화한 역병까지 역사는 감염병의 궤적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전파 속도는 이런 과거의 전염병과 비교해 이례적으로 빨랐다.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이 때문에 코로나19는 국제사회가 공동 대응해야 할 전 지구적 위기라는 인식이 일찍이 생겨났다.

온라인 실시간 수업 플랫폼도 확산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명운을 걸었다. 집단주의적 생활방식을 중시해 온 공동체의 오랜 관습에 역행하는 조치였다. 전례 없는 고립감이 사회 전체를 짓눌렀다. 저소득 노인 등 취약계층은 큰 고통을 겪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중앙포토]
사회적 거리두기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특히 가혹했다. 생존의 위기 앞에서 폐업과 극단적 선택이 이어졌다. 실제로 2021년 9월 12~14일까지 단 사흘 동안 최소 20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젊은이들은 단절과 고립을 겪었다. 친구를 만나고 이성과 교제하는 당연한 기회들마저 단절됐다. 특히 올해 23세인 2002년생 월드컵둥이들은 감염병 유행에 따라 삶과 생활에 큰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세대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 신종플루가 터졌고, 중학교에 올라가자 메르스가 창궐해 휴교령이 내려졌다. 고3이 되자 코로나19가 터졌다. 대학생이 된 후 캠퍼스는 온라인 강의와 ‘줌 대학’으로 대체됐고, 축제는 사라졌다. 등교와 휴교가 반복되는 환경에서 성장하며 비대면 생활에 익숙해진 경험이 몸에 배었다. 이들에게 삶이란 혼자 걸어가는 고독한 여정에 가까웠다. 교류하고 도움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전산업정보고등학교 교사들이 감염병 예방을 위해 교실 소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학습의 장소가 교실이 아닌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새로운 교육 플랫폼도 생겨났다. 오프라인 학원이 문을 닫고 소수(10명 안팎)를 대상으로 한 실시간 강의 수업 플랫폼이 등장했다. 일부에선 ‘대치동 학원 수업을 제주도에서도’라는 문구로 학생들을 끌어들였다. 유명 강사의 실시간 수업을 전국 어디에서나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을 두고 팬데믹 사태가 학습권의 확대를 가져왔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장시간 비대면 학습으로 인해 집중력 저하와 두통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아 학습효과 측면에서 부정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또 1:1 과외와 비슷한 형식의 실시간 수업은 단순 VOD 시청보다 훨씬 많은 수업료를 요구했다. 새로운 플랫폼을 따라갈 수 없는 환경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는 학습권의 확대가 아닌 또 다른 소외로 다가왔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직장인들의 재택근무가 일상화됐다. [뉴시스]
직장인들 역시 회식과 대면 회의를 중단하고, 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를 오가며 뉴노멀에 적응했다. 2023년 팬데믹 종식 후 사무실 근무가 재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반가움과 안도감 속에서도 어딘가 모를 어색함과 불편함을 함께 느꼈다. 어떤 이들에게 사무실 출근과 회식의 재개는 자율의 회복이라기보다 타율로의 회귀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대면 문화와 집단 협력에 익숙한 기세대는 ‘백 투 더 오피스’를, 각자도생의 감각을 체득한 젊은세대는 하이브리드 근무를 선호하며 직장 업무에 다시 적응해 나갔다.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니컬러스 블룸교수에 따르면, 완전한 재택근무는 생산성을 5~20%가량 낮출 수 있지만, 하이브리드 근무는 사무실 근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약간 향상된 효과를 낸다. 메타와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하이브리드 근무를 유지하는 이유다. 저녁 회식 문화도 달라졌다. 회식이 줄었고, 1차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감염병 사태 이후 눈치를 덜 보면서 회식에서 빠지는 젊은 직장인들의 자기 결정권도 상대적으로 강화된 측면이 있다.

소비와 노동의 풍경도 빠르게 변했다. 비대면 소비를 기반으로 한 e커머스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소비와 유통 전반에 혁신이 일어났다. 마트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한 소비자들은 더 편리하고 신속한 배달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장바구니에 담는지,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모두 온라인에 기록되며 빅데이터, 나아가 AI 학습 데이터로 축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배달 노동자와 택배 기사들의 과로, 안전 문제, 높은 스트레스가 사회적 우려로 떠올랐다.

클럽 감염 사태가 성소수자 혐오로
코로나 사태와 함께 급증한 온라인 혐오로 사회적 분열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1~5월까지 트위터, 페이스북, 온라인 카페, 커뮤니티 등 분석)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 발생 추이에 따라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가 증가했다. 그해 2월 신천지 대구교회발 확진자 대량 발생 뉴스가 전해졌다. 신천지에 대한 비난은 이내 대구라는 특정 지역 전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당시 대구 언급량은 이전 시기 주간 평균 20만 건 내외였고 부정적 언급은 20%대였다. 하지만 뉴스 보도 후 대구 언급량이 70만 건으로 치솟았고, 이 중 ‘대구폐렴’ 등 부정적 언급 비율이 60%를 넘었다. 그해 5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 내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이때는 성소수자에 대한 근거 없는 부정과 혐오 언급이 이전 시기보다 88.7%나 늘었다.

같은 달 충남 천안시 두정동 먹자골목에 수도권 방문객의 출입을 금지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중앙포토]
비대면이 일상화하고, 사람 간의 접촉과 교류가 줄어들면서 한번 생긴 사회적 불신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불신을 키우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괴담이나 가짜뉴스의 확산이다.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해 개인이 접하는 정보의 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대면 소통과 대화, 토론 등이 줄었다. 비대면 수단으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다 보니 그 출처나 진위를 파악하는 개인의 힘은 많이 약화됐다.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인 ‘인포데믹(Infodemic)’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잘못된 정보가 마치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져 사회적 혼란과 피해를 일으키는 현상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이가 대면 활동이나 사회적 결합 없이도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특히 과거 집단적 협력의 경험이 희미한 젊은 세대에서 이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런 트렌드는 기존의 사회질서, 조직의 원리와 강하게 충돌했다. 세대, 조직 문화 논쟁이 수반됐다. 젊은 세대를 자기 편익만을 추구하는 사회성 결핍 세대로 단정하는 시각도 생겼다. 하지만 이는 정작 그들이 지나온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편견이라는 성찰도 뒤따랐다.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의 존엄성, 공동체의 가치, 일하는 방식 전반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다음 팬데믹이 오면 우리는 얼마나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까. AI와 바이오를 위시한 기술적 역량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서로를 연결하고 지탱하는 사회적 힘을 강화하는 것이 해법의 핵심이 아닐까.

창간 60주년 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은 아래 링크를 통해 전체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issue/11765

※다음은 ‘금융실명제 실시’ 편입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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