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구가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6%. 하지만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에서 한국 원화가 차지한 비중은 10%(11월 24일 기준 9.47%)에 육박한다. 이는 미국 달러(78.62%)에 이어 거래 화폐 기준으로 세계 2위다. 엔화(5.8%)나 유로(1.8%)보다 훨씬 높다. 주요 외신도 “한국만큼 암호화폐에 빠진 나라는 없다”고 수시로 보도한다. 올해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부진해 일부 투자자들은 국장(국내 주식시장)으로 갈아탔지만, 여전히 코인 투자 수요는 넘쳐난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1월 26일 비트코인은 개당 8만6600달러 선까지 내려앉았다. 지난 10월 7일 최고점(12만6198달러)에서 31% 하락한 수치다. 불과 한두 달 전 쏟아지던 “연내 20만 달러까지 간다”는 장밋빛 전망과는 정반대 결과가 벌어진 것이다. 이른바 ‘4년 주기론’을 근거로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 암호화폐 침체기)가 시작됐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다만 27일 미국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AI 기업 주가가 반등하며 비트코인도 21일 이후 처음으로 9만달러를 회복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런 암호화폐의 변동성에 투자자를 괴롭히는 질문은 ‘비트코인을 사야 할 때냐, 아니냐’다. 이미 원금을 까먹은 이들은 ‘물타기’(저가에 추가 매입하는 것) 타이밍을 찾느라 애먹고 있다. 머니랩이 암호화폐 대장 격인 비트코인 하락의 배경과 전망, 투자 전략을 분석했다.
30% 빠진 비트코인, ‘크립토 윈터’ 진입하나
비트코인 주가 상승세가 꺾인 시점은 공교롭게도 지난 10월이다. 10월은 코인 업계에서 ‘업토버(Uptober)’라 불린다. 상승을 뜻하는 ‘업’(UP)과 10월을 의미하는 ‘옥토버(October)’의 합성어다. 실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0월엔 가격이 올랐지만, 올해는 7년 만에 이 패턴이 깨졌다.
전문가 분석을 종합하면 주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유동성(자금) 경색이다. 비트코인은 채권처럼 이자를 지급하거나 주식처럼 배당을 주지 않는다. 전통적인 자산과 다르다. 이 때문에 가격이 전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인다. 수요의 핵심은 돈인데, 최근 몇 주 사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12월 금리 인하 가능성 축소 등의 요인으로 시중에 돈이 말라갔다. 주식처럼 위험자산인 비트코인은 통상 금리가 낮아질수록 가격이 오른다. 여기에 역사상 최장 기간을 기록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중단) 사태가 겹쳤다. 세금은 계속 걷는데 지출을 멈추자 정부 계좌에만 돈이 쌓이고 시중에 풀려야 할 돈은 줄어든 것이다.
둘째,
인공지능(AI) 거품론이다. 월가 곳곳에서 “AI 기술의 가치나 수요가 과대평가됐다”는 경고음이 나오면서 엔비디아를 비롯한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이게 비트코인 가격 하락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월가의 유명 투자자인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Yardeni Research) 대표는 “비트코인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게 나스닥100을 3배 추종하는 ‘TQQQ’ 상장지수펀드(ETF)”라며 “한쪽이 흔들리면 다른 쪽도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유동성 경색과 AI 거품론이 주식 등 자산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면 세 번째 요인은 코인 투자 심리만을 끌어내렸다.
빌린 돈으로 투자한 레버리지 투자자의 강제 청산이다. 청산은 코인 가격이 급락해 손실이 증거금보다 커지면 거래소가 코인을 강제로 시장가에 파는 것을 의미한다. 10월 10일 하루에만 190억 달러(약 27조원)의 코인이 증발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정석문 프레스토리서치 센터장은 “레버리지 청산 사태 이후 호가창이 얇아져(특정 호가에 걸린 수량이 적어 적은 물량으로 가격이 급등락할 수 있는 상태) 비트코인 하락 폭이 다른 위험자산보다 커졌다”고 분석했다.
비관론① 4년 주기론의 학습효과
비트코인 전망은 비관론이 우세한 분위기다. 이는 4년 주기론에 근거한다. 4년 주기론은 비트코인 가격이 4년 간격으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는 주장인데, 원인은 반감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컴퓨터에서 복잡한 암호를 풀어 블록체인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참여한 사람들에게 보상으로 지급되는 구조다.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 연산 과정에 참여하는 행위를 ‘채굴(mining)’이라고 한다.
그런데 채굴 보상으로 비트코인이 무한대로 지급되면 비트코인 가치를 유지하거나 올리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연산 난도를 계속 높이고, 비트코인 총발행량을 2100만 개로 제한한다. 즉, 발행량 제한으로 비트코인 공급량이 절반으로 감소하는 시점을 비트코인 ‘반감기(Halving)’라고 부른다. 희소성을 지키기 위한 공급 감소는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과거 세 차례 반감기를 거치며 비트코인 가격은 12~18개월간 오르다 최고점을 찍은 뒤 13~18개월간 하락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2012년 11월 첫 번째 반감기 후 이듬해 11월까지 9000%가량 폭등한 뒤 1년여간 81% 급락한 바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반감기 이후에도 전고점 대비 하락률이 각각 82%, 75%에 달했다. 가장 최근인 네 번째 반감기는 지난해 4월이었고, 18개월 후인 올해 10월 가격이 최고점을 찍었다. 비록 10월 초반에 급락세가 시작됐지만 이번에도 과거 사이클이 맞아떨어진 만큼 비트코인 시장이 혹한기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암호화폐 분석업체 10x리서치는 “4년 주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비관론② 비트코인 누르는 강달러
달러 몸값도 오름세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뜻하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9월 16일 96.6에서 11월 25일 100.2로 3.7% 올랐다. 통상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비트코인은 하락 압력을 받는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셧다운 여파로 달러 유동성이 부족해 단기 자금시장이 경색되면 달러가 오른다”며 “달러 강세는 레버리지를 많이 사용한 코인 시장에 직격탄”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부족·단기 자금시장 경색→ 달러 강세→ 디레버리징(빚 줄이기)→ 비트코인 약세’ 흐름이 이어질 거란 분석이다.
내년 달러 가치는 어떨까.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쏠릴 가능성이 커 달러 지수는 내년 말로 갈수록 상승 흐름을 보일 전망”이라며 “약달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관론③ 장기 하락 신호 ‘데드크로스’ 발생
장기 하락 신호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이 9만 달러 아래로 내려가면서 이른바 ‘데드 크로스(death cross, 죽음의 십자가)’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단기 이동평균선이 장기 이동평균선을 뚫고 내려갔다. 이동평균선은 직전 며칠간의 주가를 평균한 값을 연결해 만든 선으로 가격 추세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코인 시장에선 지난 50일간의 이동평균선이 200일 동안의 이동평균선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데드크로스라고 한다. 하락장 진입 신호다. 세 번째 사이클인 2022년 비트코인은 데드크로스 이후에도 64% 하락했다. 암호화폐 전문가인 알리 마르티네즈 애널리스트는 “현재 패턴과 하락 속도가 2022년 약세장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곤두박질치는 비트코인의 바닥은 어디일까.
신중론자들은 대체로 7만 달러 선을 바닥권으로 본다. 디지털자산 솔루션 기업 헥스트러스트의 알레시오 콰글리니 최고경영자(CEO)는 “조정 국면이 지속돼 7만 달러대 초반 또는 일시적으로 그 이하로 하락할 수 있다”고 봤다. 마이크 맥글론 블룸버그 수석전략가는 “과거 차트를 보면 5만6000달러까지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내놨다. 디지털자산 분석업체 디라이브(Derive)에 따르면, 비트코인이 올해 9만 달러 아래에서 마감할 확률이 50%까지 상승했다.
(계속)
반면에 이런 우려가 과도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낙관론자들은 우선 4년 주기론이 유효할지 불분명하다는 데 주목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전처럼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인 트레이더로 유명한 밥 루카스는 최근 X( 옛 트위터)에 “2024년 반감기 이후 비트코인은 두 배도 오르지 못했다. 이번 4년 주기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고 썼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비트코인은 연말까지 20만 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낙관론자들이 내세운 근거는 뭘까.
한편, 비트코인 전망은 갈렸지만 비관론자도 낙관론자도 투자 전략 측면에선 대체로 큰 차이는 없었다.
한 전문가는
“장기 투자자에겐 선물 같은 구간이다. 이 가격이 오면 사라”고 조언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암호화폐의 변동성, 물타기 등 돈 버는 전략은 아래 링크에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