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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128명, 대형 참사…홍콩 당국, 화재 원인 규명 수사에 속도

중앙일보

2025.11.28 00:14 2025.11.2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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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이틀 전 화재가 발생한 홍콩 신계(New Territory) 타이포구의 공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宏福苑) 모습. 타다 남은 자재가 건물 외벽에 달려 흩날리고 있다. 이도성 기자

화재가 발생한지 이틀 만인 28일(현지시간) 진화작업이 종료된 홍콩 신계(New Territory) 타이포구의 공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宏福苑) 화재 현장. 숯덩이처럼 검게 그을린 건물 시멘트 외벽은 사흘째 이어진 화재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보수 공사를 위해 건물 주변을 두른 대나무 비계는 시커멓게 그을려 거꾸러졌고 타다 남은 녹색 공사용 안전망 잔해가 남아 공중에 흩날리고 있었다. 푸른 하늘 아래 화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놓인 흰 꽃은 검은 화재 현장과 대비됐다.

홍콩 당국은 이날 오전 10시 18분 쯤 건물 내 화염이 대체로 잡혔으며 진화작업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오후 2시 52분 화재가 발생한 지 43시간여 만이다. 불은 32층짜리 8개 동으로 구성된 웡 푹 코트 7개 동을 휩쓸었다. 진화에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문가를 인용해 홍콩 소방 당국 사다리 장비의 높이 제한 보다는 건물에서 나오는 800~1000도의 열기에 소방관들이 건물에 접근하지 못해서라고 설명했다.

28일(현지시간) 이틀 전 화재가 발생한 홍콩 신계(New Territory) 타이포구의 공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宏福苑) 인근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놓인 꽃이 있다. 이도성 기자

크리스 탕 홍콩 특별행정구 보안국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사망자가 12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시신이 더 발견될 수 있다고 했다. 부상자는 현재까지 79명이다. 실종자 수는 당초 당국이 발표한 200여명에서 큰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홍콩 소방 당국은 수색과 구조 작업 완료 이후 최종 실종자 수를 집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민 약 900명은 인근 임시 대피소 8곳에 머물고 있다.

한국인 인명 피해는 현재까지 파악된 바 없다. 웡 푹 코트에는 사고 시점까지 1984세대 주민 4600여 명이 거주했다. 화재 진압 및 수색·구조작업에 투입된 소방관 수는 1250명 이상이다.
 지난 26일(현지시간) 화재 발생 당시 홍콩 신계(New Territory) 타이포구의 공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宏福苑) 모습. AFP=연합뉴스


홍콩 당국은 화재 원인 규명과 함께 관계자 처벌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홍콩 경찰 등은 인명피해를 늘린 원인으로 지난해 7월부터 건물 보수 공사를 위해 둘러쳐진 대나무 비계(飛階·작업자 이동용 간이 구조물)와 가연성 자재를 꼽았다. 홍콩 경찰은 전날 아파트 단지 건물 관리회사를 압수 수색하고 아파트 보수 공사를 맡은 업체 책임자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해 수사 중이다. 또한 비계와 함께 건물 외벽을 감싼 녹색 안전망도 난연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며 관련 업체에 대한 수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홍콩 현지 매체는 인근 거주민 증언을 토대로 외벽 작업 노동자들의 ‘흡연 불씨’가 최초 발화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홍콩 경찰은 비계 인근에서 담배꽁초 흔적을 발견해 규정 위반 여부 등에 대한 조사도 나섰다. 아울러 화재 당시 경보 장치가 울리지 않아 주민 대피에 시간이 소요된 원인에 대해서도 경찰은 들여다보고 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건물 보수 공사 기간 인부들이 화재 대피로를 이동로로 활용해 일부 화재 경보기가 꺼져 있었다고 한다.

또 홍콩 반부패 수사 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는 전체 비용이 3억 3000만 홍콩 달러(약 621억원)가량 투입된 해당 보수 공사에서 부정부패가 있었는지 조사를 시작했다. 당국은 620억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며 자재 조달 등 과정에서 법규를 위반한 사항이 있는지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해 당국은 이날 보수 공사 엔지니어링 컨설팅 업체 이사 2명을 체포했다. 구룡(카우룽) 지역에 있는 해당 업체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28일(현지시간) 홍콩 신계(New Territory) 타이포구의 공공 아파트단지 웡 푹 코트(宏福苑) 화재 현장 인근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화재 피해 주민들에게 기부받은 물품을 나눠주고 있다. 뉴스1

홍콩 사회는 피해자와 유족 구호 활동에 나섰다. 화재 현장과 가까운 전철역과 광장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몰렸다. 화재 현장 인근에서 만난 9년차 택시 기사 위에씨는 참사 직후 물품을 운송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무료 탑승을 도우고 있었다. 그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작게 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콩 정부는 각 피해 가정에 1만 홍콩 달러(약 188만원) 긴급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중국 본토에서도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재단은 6000만 홍콩 달러(약 113억원)를 참사 피해 주민과 소방관 지원을 위해 내놨고 스포츠웨어 기업 안타그룹은 3000만 홍콩 달러(56억원) 상당의 현금과 장비를 기부하기로 했다.

화재 여파로 다음 달 7일로 다가온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 관련 유세 활동도 전면 중단됐다. 홍콩 행정수반인 존 리 행정장관은 선거 연기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민구.이도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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