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팽팽한 줄다리기에 28일에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은 당초 이날 예결위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하고 법정 시한인 다음 달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결위 소(小)소위에서도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해 무산됐다.
예결위는 지난 17~21일 예산안등조정소위에서 728조원 규모의 예산안에 대한 심사를 마쳤다. 하지만 여야 사이 견해 차이가 큰 사업은 심사를 보류하고 소소위로 넘겨 쟁점이 좁혀지지 않은 채였다. 소소위는 한병도 예결위원장과 이소영 민주당, 박형수 국민의힘 간사,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 등이 참여하는 비공식 협의체다. 속기록을 남기지 않아 ‘밀실 예산’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효율적인 심사를 위해 매년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지난 24일부터 가동된 소소위는 인공지능(AI) 관련 사업을 비롯해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지원, 농어촌 기본소득, 국민성장펀드 등 각종 정책 펀드 사업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조율 작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원안을 고수하는 민주당과 대폭 삭감을 주장하는 국민의힘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다. 예결위 관계자는 “핵심 쟁점 예산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주말 사이 처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회법상 예결위의 내년도 예산안 처리 시한은 11월 30일이다. 그때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12월 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것으로 간주한다(85조의3). 이 경우 공은 김병기 민주당,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넘어간다. 두 원내대표 사이 합의만 있으면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처리한 뒤 본회의에 보내는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지키기 위해 본회의 자동 부의 후 수정안을 제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166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자력으로 예산안 처리가 가능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27일 여야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법정 시한 내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은 국회의 책무”라고 말한 만큼 법정 시한을 우선순위에 둔다면 민주당이 단독으로 예산안을 처리할 공산이 크다. 이에 송언석 원내대표는 “민생 경제 위기 속에 예산안의 여야 합의 처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했다.
다만 송 원내대표는 “각종 정책 펀드 3조5400억, 지역사랑상품권 1조1500억 등 4조6000억원의 현금성 포퓰리즘 예산은 최대한 삭감하고 이를 서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예산, 지역균형발전 예산으로 사용하자는 것이 우리 주장”이라고 했다.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국가)장학금 증액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예결위 관계자는 “소수의 쟁점 탓에 감액 규모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부분만 타결되면 증액 심사는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며 “쟁점 예산의 성격상 예결위보다는 여야 원내대표 사이 협의를 통해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여야 원내대표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법정시한 준수 여부는 우 의장의 손에 달렸다. 우 의장이 여야 합의를 고집할 경우 법정 시한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2013년까지 해를 넘기기 일쑤였던 예산안 처리는 예산안 본회의 자동 부의 등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이 도입된 뒤 달라졌다. 새 법이 안착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2022년까지는 매년 12월 2~10일 사이에 처리됐다. 하지만 최근 3년간은 12월 24일(2022년)→12월 21일(2023년)→12월 10일(2024년) 처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