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간 가계 빚이 부동산에 과도하게 묶여있지 않았다면, 국내 소비가 5% 늘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 부담이 크고, ‘상급지 갈아타기’ 등에 대한 기대감이 소비를 짓눌렀다는 진단이다.
한국은행 30일 발표한 ‘부동산발 가계부채 누증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의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이후 과도하게 쌓인 가계부채로 인해 소비가 매년 약 0.4%포인트(전년 대비)씩 줄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2012년 수준에서 유지됐다면, 지난해 기준 소비는 4.9~5.4% 더 높았을 거란 분석이다.
한은의 분석에 따르면 민간소비의 구조적 둔화 폭(1.6%포인트)에서 인구구조 변화(0.8%포인트) 몫을 제외하면 가계부채(약 0.4%포인트)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찬우 한은 구조분석팀 차장은 “가계부채 문제는 심근경색처럼 갑작스러운 위기를 유발하기보다 동맥경화 같은 만성질환으로 소비를 서서히 위축시키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 최근 10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3.8%포인트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90%를 웃돈다. 조사대상인 전 세계 72개국 중 중국ㆍ홍콩에 이어 세 번째로 빠른 증가 속도다. 같은 기간 GDP 대비 민간 소비 비중은 오히려 1.3%포인트 감소했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10%포인트 이상 증가한 국가 중에서 민간 소비 비중이 줄어든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부채가 늘면 시중에 돈이 풀리며 소비도 느는데, 한국은 반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가운데 3분의 2가 주택담보대출로, 빚이 대부분 부동산에 편중된 점이다. 원리금 부담(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ㆍDSR)은 최근 10년간 1.6%포인트 늘었는데, 노르웨이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 금리 상승(0.6%포인트)보다는 빚의 규모(5.4%포인트) 자체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김 차장은 “주택담보 대출의 만기가 장기인 점을 고려하면 원리금 상환 부담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며 “소비도 계속해서 제약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통상 자산가격이 오르면 소비를 늘리는데, 이러한 ‘부(富)의 효과’가 낮은 것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은 집값이 1% 오를 때 민간 소비는 0.02%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주요 선진국의 추정치(0.03~0.23%)보다 낮다. 주택자산을 현금으로 바꿔(유동화) 소비로 연결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부족하고, 미래 더 나은 집으로 옮기거나 자녀의 미래 주거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소비를 늘리지 않는 특성 때문이다.
김 차장은 "최근 정책당국의 공조와 적극적인 대응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하락·안정되고 있다"며 “일관된 대응을 지속한다면 가계부채 누증이 완화돼, 소비에 대한 구조적 제약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