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시장 안정대책을 내놨지만 달러당 원화가치는 다시 1470원대로 떨어졌다.(환율은 상승) 원화가치 하락이 장기화할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커져 가계 부담이 늘고 기업 경쟁력까지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6일 “국민연금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을 조화시키기 위해 ‘국민연금 뉴프레임워크’ 논의를 시작했다”며 환율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발표 직후 달러당 원화가치는 1457원대까지 올랐으나 28일 1470.6원으로 다시 떨어지며 1470원대로 되돌아갔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품목은 기름값이다. 국제 유가는 완만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원화가치 하락으로 국내 휘발유 가격은 5주 연속 상승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11월 넷째 주(23~27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전주보다 L당 15.3원 오른 1745.0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역시 13.4원 상승한 1812.4원을 기록하며 평균값이 1800원대에 올라섰다.
일정 시차를 두고 물가 전반을 자극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름값만 올라도 운송비, 기계 가동비 등 전반적인 생산 비용이 오른다”며 “원화가치 하락분이 통상 3~6개월 뒤 물가에 반영되는 만큼, 내년 초부터 수입 식료품 등이 오르며 물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1.7%에서 9월 2.1% 10월 2.4%로 오르며 1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원화 약세 흐름까지 반영되면 물가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과거처럼 ‘고환율이 수출기업에 유리하다’는 공식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준영 교수는 “한국은 원자재와 중간재를 들여와 가공해 수출하는 구조라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기업과 수출기업 모두 비용 부담이 커진다”며 “무엇보다 이제 한국 기업은 가격보다 기술로 경쟁하는 만큼 고환율이 경쟁력을 높인다는 공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원재료 가격이 뛰면서 가격 경쟁력·수익성이 동시에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중소기업은 환율 위험 관리에 더 취약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협상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기 어려워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정부 대책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화 약세(환율 상승)가 단기간에 진정되기 어렵다는 우려도 크다. 석병훈 교수는 “정부가 국민연금이나 서학개미 투자를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이게 근본 원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환율은 미국과 한국의 기초 체력 차이에서 결정되는데 최근 관세 협상 등으로 원·달러 균형 환율 자체가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을 단기간에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달러당 원화가치는 현 수준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