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전주, 우충원 기자] 7573일이라는 시간이 한 사람을 통해 한 시대를 만들었다. 2006년 초록 유니폼을 처음 입은 뒤 상무에서의 짧은 공백을 제외하면 단 한순간도 전북을 떠나지 않았던 최철순은 그렇게 19년을 이곳에 묶어두었다. K리그에서만 411경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71경기, 코리아컵 26경기, 클럽월드컵 3경기. 총 511번의 출전을 통해 팀이 쌓아 올린 14개의 우승이 모두 그의 발걸음 속에 들어 있다.
최철순은 단지 기록을 위해 존재한 인물이 아니라, 전북의 역사를 함께 움직인 사람 그 자체였다. 최철순은 3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 1 2025 최종전서 선발로 나섰다. 주장완장을 차고 후배들과 함께 경기에 임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서울 김기동 감독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한 팀에서만 이 길을 걸어왔다. 대단하다.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선수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커리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북 거스 포옛 감독은 처음 만난 날부터 그를 레전드라고 불러왔다. “무슨 일을 하든 잘될 거라고 믿는다. 최철순은 전북의 자부심이자 젊은 선수들에게 길을 보여준 사람이다. 오늘 우리가 하려는 건 단 하나다. 그의 마지막을, 그가 받아야 할 모습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포옛 감독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가득했다.
그는 전북의 얼굴이자 체온 같은 존재였다. 2015년 큰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던 날, 그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장면을 남겼다. N석으로 올라가 확성기를 잡고 서포터들과 함께 목을 쉬도록 응원하던 모습. 그날의 함성과 그가 흔들던 초록색 깃발은 아직도 많은 팬들에게 선명하다. 뛰든, 서 있든, 부상으로 쓰러져 있든 그는 늘 전북이라는 팀의 심장 쪽에 있었다.
그리고 2025년 11월 30일. 그가 ACL 데뷔전을 치렀던 2006년 3월 8일부터 정확히 7573일 뒤. 마지막 홈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2만 명 넘는 팬들은 미리부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가족과 고교 동문들에 둘러싸인 채 그라운드로 들어서자, 응원가가 거대한 파도처럼 내려왔다. 그동안 동료들을 위해 뛰었고 팬들을 위해 몸을 던졌고, 팀을 위해 모든 걸 버텨온 선수에게 전북이 보내는 가장 깊고 따뜻한 인사였다.
주장 완장을 찬 채 나선 마지막 경기에서도 그는 여전히 몸을 던졌다. 습관처럼, 의무처럼,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잔디 위를 미끄러지며 상대와 정면으로 부딪히며, 전북의 등번호 25번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투혼을 남김없이 꺼내놓았다.
전반 25분, 그의 등번호와 같은 그 시간. 관중석이 다시 한번 거대한 울림으로 흔들렸다. “우리의 철순!”.
팬들은 그의 개인 응원가를 터뜨리며 마지막 힘이 될 노래를 전했다. 어느새 경기장 전체가 최철순의 커리어를 함께 되돌아보는 한 장면이 되어 있었다. 또 후반 10분 이동준이 선제골을 터트린 뒤에는 최철순을 헹가레치며 함께 응원했다.
경기를 마친 뒤에는 그의 등번호인 25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전북 현대 정유석 대표이사는 최철순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선언했다. 최철순은 10년전의 기억처럼 팬들 앞에서 함께 응원가를 불렀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응원가도 함께했다.
그라운드 위에서 그는 늘 묵묵했고 필요할 때는 격렬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섰고 화려함보다는 버티는 힘으로 팀을 지탱했다.
전북 영광의 시대는 여러 선수들이 만들었다. 하지만 전북의 ‘영혼’을 이야기할 때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은 변함없이 그였다. 최철순.
누구보다 오래 뛰었고, 누구보다 많이 버텼고, 누구보다 깊게 사랑받았던 전북의 상징.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녹색빛으로 빛났던 선수. 그의 7573일은 끝났지만 그가 남긴 시간은 그대로 전북의 역사가 됐다.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