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만수(이병헌)는 취업에 목숨을 걸었다. 그렇지만 희망을 안고 찾아간 ‘문 제지’에서 굴욕만 맛본다. 만수는 다시 결심한다.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하릴없다’는 듯이.
혹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하릴없다’는 “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의미다. “어쩔 수가 없다”와 거의 같다. 일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글에서는 어쩌다 접할 수 있다. 때론 사회적 무력감이나 고립감 같은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나온다.
“숫제 알거지가 되어 여덟 식구가 하릴없이 쪽박을 찰 수밖에 없었다.”(송기숙 ‘녹두장군’) 소설 ‘녹두장군’은 조선 후기 부패한 관리들의 혹독한 수탈과 농민들의 빈곤을 보여 준다. 작가는 피할 방법이 전혀 없고,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음을 ‘하릴없이’로 나타냈다. 여덟 식구가 발버둥도 못 치는 무력감과 고립감을 ‘하릴없다’는 말로 전했다. 수탈 앞에서 그들은 죽거나 ‘하릴없이’ 일어서야 했다.
“몸뚱이는 네댓 살배기만큼도 발육이 안 되고 그렇게 가냘픈 몸 위에 가서 깜짝 놀라게 큰 머리가 올라앉은 게 하릴없이 콩나물 형국입니다.”(채만식, ‘태평천하’) 소설 ‘태평천하’의 ‘하릴없이’는 문맥상 ‘틀림없이’ ‘영락없이’와 통한다. ‘하릴없다’는 이렇게 ‘조금도 틀림이 없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의 모습은 하릴없는 거지였다” “그는 겉모습만 보면 하릴없는 백수다”에서도 ‘틀림이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