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국민 인식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계엄 1년을 앞두고 중앙일보가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지지 정당과 정치 성향에 따라 정치적 양극화의 책임 소재 및 계엄이 끼친 부정적 영향에 대해 확연히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도 확인돼 국론 분열의 우려가 상당하다는 것도 확인됐다.
‘계엄 이후 정치적으로 더 양극화가 됐다’고 답한 비율은 77%로 ‘그렇지 않다’(18%)는 응답을 압도했다. 이 같은 인식은 연령·지역·직업별로 구분해서 봤을 때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국민 전반의 공감대가 컸다. 다만, 더불어민주당(79%)과 국민의힘(72%) 등 거대 양당 지지층에 비해 조국혁신당(87%)과 개혁신당(82%) 등 소수 정당 지지층이 양극화 문제를 더 심각하게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돼 제3 정당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정치적 양극화의 책임이 어디에 주로 있는지에 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25%▶국민의힘 18%▶언론 16%▶민주당 12%▶정치 유튜버 10%▶이재명 대통령 10%▶국민 2% 등의 순서로 답변 비율이 높았다. 책임 소재에 대해선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의 책임이 더 크다는 식의 응답이 이뤄졌다.
민주당 지지층에선 윤 전 대통령(38%)과 국민의힘(29%)의 책임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은 민주당(32%)과 이 대통령(26%)으로 주로 책임을 돌렸다.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분열 심화로 기우는 상황에서 거대 정당의 지지층은 상대방에 대한 적대화, 내 편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계엄이 우리 사회에 미친 문제점에 대해선 ▶정치·사회적 분열 심화 27% ▶민주주의 가치 약화 26% ▶경제적 불확실성 심화 19% ▶국제적 신인도 하락 13% 등의 순서로 답변이 많았다. 민주당 지지층에선 민주주의 가치 약화를 꼽은 응답자(38%)가 가장 많았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분열 심화라고 답한 이들(26%)이 가장 많았다. 정치 성향별로도 진보는 민주주의 가치 약화(42%)를, 보수는 분열 심화(30%)를 각각 가장 많이 꼽았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민주당·국민의힘 지지층, 진보·보수가) 계엄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는 걸 잘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잘못된 계엄령 발동 이후 정치권에선 계엄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비상계엄 선포의 법적·절차적 요건을 강화하고, 계엄 선포 뒤 군인과 경찰의 국회 출입을 금지하는 계엄법 개정안이 지난 7월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또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재차 부각되면서 대통령 권한의 분산에 방점을 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커졌다.
하지만 우리 국민 절반은 대통령 권한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대통령 권한 수준에 대한 견해를 물은 결과▶현행 수준 유지 49%▶현행보다 축소 31%▶현행보다 확대 13% 등의 순서였다. 이러한 입장은 지지 정당별로 간극이 컸다. 민주당 지지층에선 현행 수준 유지(59%) 응답이 가장 많았을 뿐 아니라,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는 답변이(21%)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권한 축소(54%)를 바라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현행 유지(34%)라는 답이 그 뒤를 이었다. 민주당 소속인 이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만큼 지지 정당별로 답변이 크게 엇갈린 것이다.
이 대통령에 대해선 긍정 평가가 우세했다. 지난 6월 4일 취임 이후 대통령으로서 일을 얼마나 잘했는지 물은 결과 ‘매우 잘했다’(36%)와 ‘대체로 잘했다’(27%)를 포함해 ‘잘했다’는 답변은 62%에 달했다. 반면 ‘대체로 잘못했다’(13%)와 ‘매우 잘못했다’(19%)를 합한 ‘잘못했다’는 32%였다. 연령별로 70세 이상, 지역별로 대구·경북을 제외하곤 모두 긍정 평가가 많았다. 보수층은 부정 평가, 진보층은 긍정 평가가 각각 높은 상황에서 중도층에서 긍정(68%) 답변이 부정(26%) 답변을 크게 앞질렀다.
배철호 리얼미터 정치에디터는 “계엄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가 정상화의 요구와 기대가 반영돼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공고하다”며 “다만, 진영 정치가 일상화된 데다가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나 최근 대장동 이슈 등으로 인해 지지율 탄력성이 작아 추가 상승이나 하락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정당 지지율은 최근 다른 여론조사 흐름과 비슷했다. 민주당이 42%로 가장 높았고 국민의힘은 26%로 나타났다. 개혁신당(4%), 조국혁신당(2%), 진보당(1%) 등 소수 정당의 지지율은 거대 양당과 큰 차이를 보였다. 다만 ‘지지 정당 없다’(21%)와 모름·무응답(2%) 등 무당층도 23%에 달했다.
이번 여론조사에선 계엄 사태 여파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아 전반적으로 여권에 유리한 여론 환경이 조성돼 있다는 게 확인됐다. 하지만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6·3 지방선거에 대한 전망은 이런 분위기와 달랐다.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48%)와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42%)는 응답이 오차범위(±3.1%포인트) 내의 접전 양상이었다. 다만,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중도층에선, 여당 후보가 다수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1%, 야당 후보가 다수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36%였다. 여전히 야권에 불리한 선거 지형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여론조사 어떻게 진행했나
이번 조사는 중앙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11월 28일~29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가상번호) 면접 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응답률은 10.8%(9312명 중 1002명)이며 10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값을 부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