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신약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13년 만에 무더기 약품 가격 인하에 나섰다. 신약(오리지널 약)의 특허 기간이 끝난 후 생산하는 복제약(제네릭)이 대상이다. 이번 조치로 환자 부담이 일부 줄어든다. 국내 제약사 매출이 적지 않게 줄게 돼 신약 개발 투자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약가 대책을 공개했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보 등재 기간을 최대 240일에서 100일로 줄인다. 신약의 비용·효용 분석 방법을 개선한다. 혁신적 제약기업, 연구·개발 적극 투자 기업을 우대한다.
현재 제네릭 약가는 오리지널의 53.55%이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3년에 걸쳐 40%로 낮춘다. 가령 오리지널 약이 1000원이라면 제네릭의 지금 가격은 536원이고, 내년 7월 이후 400원으로 내려간다는 뜻이다. 환자 부담은 인하 가격의 20~30%인 27~41원 줄어든다.
건보가 되는 제네릭은 2만 1000여개이다. 정부는 이번에 6000여개의 가격을 내린다. 2012년에는 모든 제네릭 가격을 14%(1조7000억원) 내렸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국장은 "2012년 인하된 후 같은 가격을 유지하는 6000여개만 내린다. 이들 약은 그동안 충분히 이익을 확보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중증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보 적용을 앞당긴다니 환영할 만하다"며 "제네릭의 장점은 가격이 낮은 것인데, 오히려 높게 돼 있기 때문에 이를 개혁해 연구·개발(R&D)에 투입하면 긍정적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제네릭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17배로 높다. 정부는 이걸 낮춰서 건보 지출(연간 1조원 미만 예상)을 줄이려 한다. 그런데 약품비가 늘긴 했지만 약을 제외한 나머지 진료비는 더 늘었다. 지난해 약품비는 2017년보다 65.6%, 진료비(수술·검사·재료 등)는 74.2% 늘었다. 같은 기간 진료량도 늘고 노인 인구(증가율 39.4%)도 늘어 약품비와 진료비를 다 끌어올렸다.
지난해 건보 지출은 111조원이다. 의정 갈등 여파로 5년에 걸쳐 10조원 더 늘어난다. 지출을 억제하려면 과잉진료 축소, 약 사용량과 가격 관리가 필요하다. 약가는 10여년 제대로 손대지 않았다. 정부는 '약가 거품'이 의사 리베이트 재원으로 쓰인다고 의심한다.
그러나 기업은 비상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협회는 "제약산업은 반도체 못지 않게 중요한 미래 먹거리"라며 "이번 조치로 연구·개발 투자와 고용의 핵심 재원이 줄어 신약 개발 지연, 설비 투자 축소, 글로벌 경쟁력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유명 제약사 대표는 지난달 28일 "정부가 제네릭을 왜 자꾸만 '나쁜 존재'로 보나. 제네릭 덕분에 코로나19를 극복했지 않았느냐"며 "약가 인하는 영업이익 감소로 연결돼 신약 개발 투자를 더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제약사 대표는 "연간 130억~150억원 매출이 줄어든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회사는 좋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자 부담 감소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학연구』최근호에 실린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정책 영향' 논문(교신저자 최윤정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에 따르면 당시 약가 인하된 기업의 2013~2019년 매출이 26~51.2% 줄었다. 이들 기업은 대응책으로 비급여 의약품과 미인하 약 생산을 늘렸다. 이로 인해 소비자 부담이 오히려 13.8% 증가했다. 건보 재정 절감 효과도 기대보다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