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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다시 잇는 일, 보상 적어도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어” [Health&]

중앙일보

2025.11.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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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대한혈관외과학회 공동 선정 이상수 양산부산대병원 외과 교수

증상 없는 시한폭탄 혈관 질환
암보다 사망률 높지만 인식 낮아
수술 난도 높은데 제도 지원 부족

양산부산대병원 외과 이상수 교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어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성욱 객원기자
2005년 개봉한 영화 ‘아일랜드’는 인간 복제를 통해 장기 이식을 받는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이다. 복제인의 장기를 교체하는 수술 장면을 지켜보던 젊은 청년은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앞으로는 혈관을 정밀하게 다루는 의사가 필요하겠구나.’ 그날 이후 그는 혈관외과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이제 그 청년은 국내 혈관외과의 발전을 이끈 주역이 됐다. 수십 년간 혈관 질환 치료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환자의 생명을 지켜내고 있다. 연간 2000여 건의 수술을 집도하는 혈관 전문의, 이상수 양산부산대병원 외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 교수는 스스로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젊은 시절 실험용 쥐 3000마리를 대상으로 혈관 봉합을 연습해 손끝의 감각을 익혔다. 2000년대 후반엔 미국 애리조나 심장병원(Arizona Heart Hospital)에서 수술 실력을 다진 후 귀국, 양산부산대병원에 혈관외과를 개설했다. 최근에는 혈관 봉합 모델 관련 특허를 취득해 새로운 수술기법 개발에도 나섰다. 이 교수는 “혈관 질환은 임파선암이나 대장암보다 사망률이 높지만, 인식은 턱없이 낮다”며 “갑자기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중한 병”이라고 강조했다.


Q : 혈관 질환이 위험한 이유는.
A : “혈관은 인체의 모든 장기와 세포를 잇는 생명의 통로다. 이 길이 막히면 조직이 괴사하고, 터지면 대량 출혈로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특히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복부 대동맥류는 직경이 7~10㎝가 돼도 전조 증상이 없다. 터지면 사망률이 80%에 이른다. 많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한다. 조용히 진행되지만 한번 발병하면 치명적이다.”

혈관외과는 뇌·심장을 제외한 전신의 혈관 질환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목의 경동맥, 복부 대동맥, 팔다리의 말초혈관까지 모두 혈관외과의 영역이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경동맥 협착증 ▶복부 대동맥류 ▶하지정맥류 ▶심부정맥 혈전증 등이 있다. 이 교수는 “혈관이 막히면 장기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위급한 상황이 온다”며 “혈관외과의 역할은 단순히 막힌 길을 뚫는 게 아니라 생명을 다시 잇는 일”이라고 말했다.


Q :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들었다.
A : “증상이 뚜렷하지 않고,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은 탓이다. 혈관 질환은 뇌졸중이나 심장 질환 못지않게 위험하지만, 일반인에겐 여전히 낯설다. 말초동맥 질환의 경우 다리 통증이나 저림 증상이 있어도 대부분 단순한 노화나 근육통으로 착각해 치료 시기를 놓친다. 심하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데, ‘말초’라는 단어 때문인지 덜 심각한 질환으로 여겨진다. 혈관 질환은 조기에 발견해 빨리 치료할수록 예후가 좋다.”


Q : 치료 예후가 얼마나 달라지나.
A : “30년 전만 해도 복부 대동맥류 수술 사망률은 40%에 달했다. 지금은 1~3% 수준이다. 그만큼 수술 기술과 환자 관리가 발전했다. 복부 대동맥류나 말초혈관 폐색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일수록 신속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Q : 어떻게 치료하나.
A : “‘혈관 내 시술’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풍선이나 스텐트를 이용해 혈관을 넓히고 혈류를 회복하는 방식이다. 절개 범위가 작고 회복이 빨라 고령자에게도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혈관 질환 치료를 위한 수술기법도 꾸준히 개선해 왔다. 최근에는 실제 혈관처럼 작동하는 봉합 모델을 만들어 특허를 취득했다. 이 모델은 젊은 의사를 교육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Q : 혈관외과의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A : “혈관외과는 응급이 많고 수술 난도가 높다. 심야에 터진 대동맥류를 수술하거나 다리 혈전으로 괴사 직전인 환자를 살려내야 할 때도 잦다. 수술의 위험도에 비해 보상은 지나치게 낮다.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다. 그러니 젊은 의사들이 이 길을 기피한다. 최신 치료기기도 가격 문제로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환자들이 선진국 수준의 치료를 받으려면 수가 현실화와 기기 접근성 개선이 꼭 이뤄져야 한다.”


Q : 보람 있는 순간도 많을 것 같다.
A : “71세 여성 환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위와 장, 간으로 혈류를 공급하는 주요 혈관 세 곳이 모두 막혀 있었다. 심장 기능도 좋지 않아 수술 중 사망 위험이 높았다. 며칠을 고민하다 수술을 결정했고, 결국 성공했다. 배가 아파서 식사를 못 하던 환자가 1년 뒤 건강하게 걸어서 찾아왔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Q :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A : “30·40대는 돈보다 실력을 쌓아야 할 시기다. 의사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멈추면 환자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지금도 해외 학회에 가면 70세 넘은 석학들이 첫 세션부터 끝까지 앉아 공부한다. 꾸준한 기술 연마가 결국 의사의 자존감을 결정한다. 혈관외과는 힘들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한 의학 분야다. 보상은 적어도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이 젊은 의사들에게도 희망의 길로 이어지길 바란다.”



신영경([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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