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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드라이버 터지는 악몽"...성은정, 10년 만의 재기

중앙일보

2025.11.30 14:53 2025.11.3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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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CC 연습장에서 만난 성은정은 ″일주일 두세 번 최대 15km 달리니 몸과 마음이 안정된다″고 했다. 성호준 기자
벌써 10년이 다 된 일이다. 2016년 6월 열린 KLPGA 투어 BC카드 한경 레이디스에서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17세 여고생 성은정이 박성현 등과 함께 경기하면서 마지막 홀에서 3타 차 선두였다. 그러나 마지막 홀 트리플보기로 연장에 끌려가서 오지현에 졌다. KLPGA 투어 사상 최악의 역전패로 평가된다.

그 성은정(25)이 돌아왔다. 지난 14일 끝난 KLPGA 2026년 정규투어 시드 순위전에서 22위로 내년 출전권을 획득했다. 성은정은 농구 선수 출신 부모를 둬 174cm의 균형 잡힌 체구다. 골프를 위한 능력은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 성은정이 20대 중반에야 1부 투어 선수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다.

먼 길을 돌아왔다. 성은정은 아마추어에서 22승을 했다. 초등학교 때 국가대표가 됐고 만 13세인 2013년 KLPGA 대회 3위를 했다. 2016년엔 US 여자 주니어 아마추어 챔피언십, US 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연속 우승했다. 한 해에 이 두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건 남녀 통틀어 성은정이 처음이었다. 남자 쪽에서 타이거 우즈와 닉 던랩이 두 대회를 모두 우승했지만, 같은 해에 우승한 건 아니었다.

성은정이 9년 전 KLPGA 투어 마지막 홀 3타 차 리드를 날리고 역전패한 건 OB 때문이었다. 이후 서서히 드라이버 입스 증세가 왔다. 성은정은 "자다가 드라이버가 터지는(OB가 나는) 악몽에 깰 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성은정은 "2021년~2023년이 가장 힘들었다. 나갈 수 있는 대회가 없었다. 2부 투어 시드전에 나가도 1라운드에 탈락했다. 2부 투어 시드전이 1년에 4번 있으니 총 4라운드만 쳤다. 1부 투어 시드전 예선(2라운드 후 컷) 합쳐 1년에 6라운드 칠 때도 있었다. 시드전에서 자꾸 떨어지니까 시드전에 나갈수록 압박감이 점점 커지더라"고 했다. 2018년 미국 2부투어에서 뛸 때는 호르몬 치료 때문에 체력이 달려 나인홀을 걷기도 힘들 때도 있었다고 했다.

인생 3분의 1이 넘게 슬럼프였다. 10년에 가까운 슬럼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돌아온 의지가 대단하다.
성은정이 2015년 US 여자 주니어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컵을 들고 있다. 성은정 2016년에도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중앙포토

그의 부모는 운동선수 출신으로 딸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바쳤다. 주니어 시절부터 해외 대회에 비즈니스석에 태워 보낼 정도였다. 성은정은 "대단히 고맙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나를 골프 선수 말고 그냥 평범한 딸로도 대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초 독립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일반인 대상 레슨도 했다. 부모님과 성은정 자신까지 3명이 쫓아다니며 노력해도 힘들었는데,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혼자 하니 오히려 잘됐다.

성은정은 "마음이 편하고 온전히 집중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주위에선 부모님이 내게 부담을 준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내가 나에게 부담을 준 거였다"고 했다.

그는 또 "올해 스코티 셰플러의 인터뷰 내용을 곱씹어봤다. '골프 실력보다 중요한 건 훨씬 더 많다. 삶의 궁극적인 만족과 정체성을 성적이나 성공에서 찾지 않겠다'고 하더라. 대회장 나갈 때마다 못 치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이제는 못 친다고 누가 죽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성은정은 "레슨하면서 좋은 분들도 알게 됐다"고 했다. 부모 바깥의 다른 넓은 세상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성은정은 ″내가 봐도 나만큼 오래 슬럼프로 고생한 선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성호준 기자
오랜 슬럼프를 이겨내고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몸 관리라고 여긴다. 그는 "괴로워서 술을 마실 때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많게는 15km를 달린다. 내가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좋아지고 그 템포에 몸을 실으면 마음이 안정되더라"고 했다.

성은정은 "과거엔 최고 장타자라고 칭찬 들었는데 요즘 나보다 멀리 치는 선수들 많더라. 어릴 때 언론에서 내 장기가 드라이버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 사실 내 장기는 드라이버가 아니라 아이언"이라고 했다. 드라이버에 집착하지 않으면 드라이버와도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다.

"답을 찾기 어려울 때 잘 모르던 KPGA의 최진호 등을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성은정은 말했다. 어머니와도 화해했다. 성은정은 "요즘 어머니는 골프 라운드를 많이 하신다. 그래도 나를 보고 '오늘 왜 보기를 했느냐'고 묻곤 하신다. 그런 거 보면 엄마는 아직도 골프를 모른다"며 웃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email protected]

성호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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