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 인근에서 주방위군 병사 2명을 총으로 쏜 라마눌라 라칸왈(29)의 범행 동기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 부대원으로 활약하던 그가 미군을 표적으로 삼은 이유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라칸왈은 지난달 26일 백악관에서 200여m 떨어진 교차로에서 주방위군 앤드루 울프(24)와 사라 벡스트롬(20)을 권총으로 사격했다. 벡스트롬은 숨졌고, 울프도 위독한 상태다.
거주하던 워싱턴주(州)에서 워싱턴DC까지 차를 몰고 와 범행을 벌인 라칸왈은 2021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당시 미국으로 데려온 7만6000명의 아프간 난민 중 하나다. 미국 입국 전까지 ‘제로유닛’ 소속 대원으로 아프간에서 활동했다. 제로유닛은 CIA 지휘를 받아 운영되던 대테러 부대다.
연방수사국(FBI)의 범행동기 발표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 진보 세력 탓이라 주장 중이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NBC방송에 “아프간 포기 당시 바이든 행정부가 신원조사 없이 사람들을 미국으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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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바이든과 진보 세력 탓”
그러면서 “라칸왈이 이 나라에 온 이후 급진화됐다” 며 “그것(급진화)이 그가 사는 지역 커뮤니티와 주에서의 연결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라칸왈이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워싱턴주에 살며 정착을 도운 시민단체 등의 영향으로 극단주의 성향이 됐다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트루스소셜에 “조 바이든, 카멀라 해리스 등이 조사·검증 없이 누구든 들어올 수 있도록 해 나라를 망쳐놨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망명을 신청한 라칸왈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승인해 준 것에 대해서도 놈 장관은 “망명 신청은 바이든 행정부 때 시작됐고, (승인도) 그들이 제공한 정보를 갖고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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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당시 아무 이상 없었다”
하지만 제로유닛은 CIA가 운용한 최정예 부대다. 탈레반 등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이들을 비밀리에 암살하는 일을 해왔다. 마크웨인 멀린(공화·오클라호마) 상원의원은 “제로 유닛은 상위 1%(부대) 중에서도 최고”라고 평가했다.
입대 당시는 물론 활동 중에도 CIA의 철저한 ‘사상 검증’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라칸왈의 범행 동기가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만으론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NBC는 지적했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CNN에 “2021년 입국 직전 라칸왈은 모든 조사에서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라칸왈이 제로유닛 활동 당시 겪은 정신적 어려움이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라칸왈 가족들은 그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어왔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라칸왈이 과거 부대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라칸왈이 조울증 증세로 1~2주에 한 번 차로 대륙을 횡단하거나 자살 충동도 느껴왔다”고 했다.
불안정한 법적 지위와 경제적 어려움이 불만이었을 거란 해석도 있다. 미국에선 아프간 난민에 대한 특별이민비자 발급이나 망명 허가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직 제로유닛 대원 약 3000명은 노동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라칸왈도 아마존에서 배송관련 비정규직으로 잠시 일했을 뿐 수년간 일자리를 못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