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본부장, EU '수출장벽 애로' 유럽진출 韓기업 청취(종합)
'발등의 불' 철강·배터리 등 현지 주요기업 총출동…정부에 SOS
(브뤼셀=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진작 왔어야 했는데 미국과 통상관계 안정화에 총력을 다하느라 이제야 뵙게 됐습니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유럽 진출 기업인 여러분의 생생한 말씀을 듣고 유럽연합(EU) 집행부와 협상에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1일 오전 유럽연합(EU) 본부와 멀지 않은 브뤼셀 시내의 한 호텔에 현지에 진출한 한국 주요 기업인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이 곳에선 현 정부 출범 이후 EU의 수도 브뤼셀을 방문한 최고위급 인사인 여한구 산업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간담회가 열렸다.
여 본부장은 다음날로 예정된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과 면담을 앞두고 유럽 내 한국 기업의 어려움을 청취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한국 기업에 큰 수출 타격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신규 철강 무역 제한 조치를 예고했고 내년부터는 EU로 수입되는 역외 생산 제품에 대해 EU 내 생산 시 지불하는 탄소 비용과 동등한 추가적인 탄소 가격을 부과·징수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할 예정이라 우리 기업들이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방증하듯 이날 간담회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업계를 비롯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유럽에 진출한 한국 주력 기업 관계자가 총출동해 EU와 무역에 당면한 난관을 호소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여 본부장은 모두 발언에서 "지난 수십년 우리 기업의 글로벌화와 해외 진출에 도움을 주던 자유무역, 다자무역 체제가 근본적으로 재편성되는 상황이고, 미국에서 먼저 변화가 일어난 뒤 EU 등 다른 무역 상대국에도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며 어려움과 정부에 대한 요청 등을 기탄없이 이야기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EU와 무역에서 우리 기업이 직면한 사안의 엄중함을 알기에 산업부에서도 통상분쟁대응과장, 구주통상과장, 다자통상법무관, 기후에너지통상과장 등이 함께 왔다고 덧붙였다.
여 본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럽 진출 기업들은 애로 사항과 건의를 쏟아냈다.
장영훈 현대제철 유럽영업실장은 "시행 예고된 새로운 철강 저율관세할당(TRQ) 제도에 따르면 전체 철강재 기준 약 47%의 쿼터가 축소될 것으로 보여 유럽 사업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며 "향후 국가별 쿼터 협상에서 자동차용 강판 중심으로 최대한 한국 쿼터를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재완 포스코 유럽법인장은 EU 집행위원회가 추진 중인 신규 철강 무역 제한 조치에 대한 유럽내 고객사들의 우려를 전하며 안정적 거래 관계 유지를 위해 정부가 EU 당국과 적극적인 협상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포스코는 유럽의 자동차, 풍력, 태양광, 전자 제품 등 주요 산업에 연간 200만t의 제품을 공급 중이다.
이용걸 LG에너지솔루션 대외협력담당 상무는 "EU가 미국, 중국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전기요금을 매기는 탓에 제조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며 배터리 제조 산업을 EU가 시행 중인 에너지 집약산업군으로 편입시켜 보조금 지원정책의 수혜를 입을 수 있도록 정부가 힘을 기울여 달라고 건의했다.
전체 매출 중 EU 비중이 17%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이상주 유럽총괄대외협력팀장은 EU 투자와 사업기회 제공 등에서 역내 기업을 우선하려는 최근의 EU 정책 등에 대해 우려를 전달했다.
장재량 현대차 글로벌정책전략실 상무는 EU 집행위원회가 연내 국내산소재사용요건(LCR)을 포함한 자동차 패키지 법안 발표 예정인 가운데 한국산 차량에 대한 비관세 장벽에 대한 염려를 표명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 항에서 한국산 제품에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문동현 세중해운 유럽지점장 겸 재벨기에 경제인 협회장은 "고객사들이 CBAM,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등 EU의 규제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이날 간담회에 앞서 벨기에를 대표하는 싱크탱크인 브뤼겔연구소의 이그나시오 가르시아 베르세로 선임연구원과 면담하고 한·EU의 큰 틀의 관계 설정, 철강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다고 산업자원부는 밝혔다.
여 본부장은 산업부 과장 시절이던 20여년 전 당시 EU 측 협상 수석대표이던 베르세로 선임연구원과 함께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댄 인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