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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악몽’ 이겨낸 성은정

중앙일보

2025.12.0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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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정. 성호준 기자
2016년 6월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BC카드 한경 레이디스 마지막 날, 여고생 성은정은 챔피언조에서 3타 차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마지막 홀 트리플보기로 연장에 끌려갔다. KLPGA 투어 사상 최악의 역전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로부터 9년, 성은정(26)이 돌아왔다. 지난달 14일 끝난 KLPGA 시드전에서 22위로 내년 출전권을 획득했다.

골프를 위한 능력이라면 뭐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였던 성은정이 20대 중반에야 1부 투어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먼 길을 돌아왔다. 그는 13세였던 2013년 KLPGA 투어 대회에서 3위를 했다. 2016년에는 US 여자 주니어아마추어 챔피언십과 US 여자 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성은정이 9년 전 3타 차 리드를 날리고 역전패한 건 OB 때문이었다. 이후 서서히 드라이버 입스 증세가 왔다. 그는 “자다가 드라이버가 터지는(OB가 나는) 악몽에 깰 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2021~23년이 가장 힘들었다. 나갈 수 있는 대회가 없었다. 2부 투어 시드전에 나가도 1라운드에 탈락했다. 2부 투어 시드전이 1년에 네 번 있으니 총 4라운드만 쳤다. 1부 투어 시드전 예선(2라운드 후 컷) 합쳐 1년에 6라운드만 칠 때도 있었다. 자꾸 떨어지니 시드전에 나갈수록 압박감만 점점 더 커졌다”고 말했다.

성은정의 부모는 딸의 주니어 시절부터 해외 대회에 비즈니스석에 태워 보낼 만큼 열심이었다. 그는 “고마웠다. 하지만 엄마·아빠가 나를 골프 선수 말고 그냥 평범한 딸로도 대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 독립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반인 대상 레슨도 했다. 자신과 부모까지 3명이 노력해도 힘들었는데, 아르바이트 시간까지 쪼개 쓰며 혼자 하니 오히려 문제가 풀렸다.

“마음이 편하고 온전히 집중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주위에선 부모님이 내게 부담을 준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내가 나에게 부담을 준 거였다”는 성은정은“올해 스코티 셰플러 인터뷰 내용을 곱씹어봤다. ‘골프 실력보다 중요한 건 훨씬 더 많다’ ‘삶의 궁극적인 만족과 정체성을 성적이나 성공에서 찾지 않겠다’고 하더라. 대회장에 나갈 때마다 ‘못 치면 어떡하지’ 불안했는데 이제는 ‘못 친다고 누가 죽나’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긴 슬럼프를 이기고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몸 관리 덕분이라고 여긴다. 성은정은 “괴로워서 술을 마실 때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씩, 길게는 15㎞를 달렸다. 내딛는 발소리가 좋고 그 템포에 몸을 실으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털어놨다. 소원했던 엄마와도 화해했다. 그는 “요즘 엄마가 골프 라운드를 많이 하는데, 나더러 ‘오늘 왜 보기를 했냐’고 묻곤 하신다. 그런 거 보면 엄마는 아직도 골프를 모른다”며 웃었다.





성호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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