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전 1시 13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와’라는 탄성도 잠시, 춘천의 병원 대신 고흥에 머문 박찬흠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의 미션은 우주 바이오 실험 장비인 ‘바이오캐비넷(BioCabinet)’을 차세대 중형위성 3호에 실어 지구 밖으로 온전히 보내는 것. 아침이 다 돼 위성 교신 후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는 걸 확인한 순간, 밤을 꼴딱 새운 박 교수 눈이 촉촉해졌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려운 점이 엄청 많았는데, 발사에 성공해 좋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에서 찾기 어려운 ‘우주를 연구하는 의사이자 의과학자’다. 더 나은 환자 치료를 위해 우주 의학에 뛰어든 지 올해로 11년째. “암 수술 환자에 이식용으로 쓸 고막 등 인공 장기를 만들다 한계에 부닥쳤고, 자연스레 중력이 적고 연구에 용이한 우주를 바라보게 됐다”고 한다. 두경부암 치료, 코 재건 등 환자 진료도 놓지 않았다. “진료를 계속해야 ‘이런 걸 개선하면 환자에 도움이 되겠다’는 영감을 얻을 수 있어서”였다.
2021년 시동을 건 바이오캐비넷은 55㎏짜리 첨단 연구 탑재체다. 바이오 3D 프린터와 줄기세포 분화 배양기 등을 담았다. 중력이 거의 없고 방사선 노출이 큰 우주 환경에서, 미니 인공 심장을 만들고 세포 생존, 기능 변화 등을 관찰하는 게 목표다. 미세혈관이 많은 심장은 지상에서 만들기 어렵고, 우주인에게 심혈관 질환이 특히 치명적인 걸 감안해 첫 우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박 교수 등 8명이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고, 누리호가 무사히 우주로 날아가면서 연구팀은 꿈의 ‘첫 단추’를 끼웠다.
각국의 우주 실험은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캐비넷 같은 실험 장비를 직접 만들어 보낸 경우는 드물었다. “위성을 통한 인공 장기 3D 프린팅은 세계 최초”라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그는 “바이오캐비넷 연구를 시작한 뒤 휴일을 잊고 살았다. 자정 전 귀가한 날도 거의 없을 정도”라고 했다. “해외 자료는 공개가 안 돼 있고, 국내에선 참고할 만한 선행연구가 없어 (연구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이오캐비넷의 임무 기간은 60일. 실험 시계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 장비 내 온도·압력 등 간단한 정보는 이미 들어오고 있고, 줄기세포로 심장을 만들고 혈관이 분화하는 과정의 영상·수치 등은 이르면 이번 주부터 정기적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박 교수는 이미 더 먼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번 실험의 성공만큼 우주 환경의 영향을 받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분석해 향후 연구에 소중하게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7년엔 교모세포종(뇌종양) 치료를 위한 지구 귀환형 위성 ‘바이오렉스(BioRexs)’ 발사에 나설 계획이다. 가장 악성 종양으로 꼽히는 교모세포종을 지구가 아닌 우주 환경에서 배양한 뒤, 항암제 투여 등의 실험을 하게 된다. 달·화성 프로젝트도 추진할 생각이다. “꿈을 먹고 산다”는 그에게, 실현해야 할 제2, 제3의 꿈이 계속 쌓여 가는 셈이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우주 바이오 분야는 연구개발 투자가 중요한 만큼, 정부 지원도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같은 도전이 쌓이면, 젊은 의사·과학자들도 우주 연구를 생각해보는 시대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