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 후폭풍이 거세다. 쿠팡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경찰은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피(IP)와 이메일 계정을 확보해 수사 중이다.
1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따르면 쿠팡 정보 유출 협박성 메일은 쿠팡과 고객 양쪽에 전달됐다. 지난달 25일 쿠팡 고객센터에 보내진 메일은 “회원 개인정보를 갖고 있다. 보안을 강화하지 않으면 언론에 알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16일엔 쿠팡 고객 다수도 비슷한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일부 고객이 쿠팡 측에 민원을 제기했고, 쿠팡이 자체 조사에 나섰다(중앙일보 11월 30일자 1면).
경찰은 고객과 쿠팡 측이 받은 발신자 이메일 계정이 각각 다른 2개라고 밝혔다. 2개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동일인인지, 또 이메일 발신자와 고객 정보 유출자가 같은 사람인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범행에 사용된 IP 주소를 확인해 국제공조를 통해 추적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유출 사태의 핵심 관련자가 중국 국적의 쿠팡 전 직원이고, 해당 직원은 한국을 떠난 상태란 주장과 관련해 경찰은 “수사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보 유출에 대한 추가 피해 우려에 대해 회원 탈퇴는 물론 집단소송까지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쿠팡 이용자 14명은 이날 쿠팡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1인당 위자료 20만원을 청구했다. 쿠팡 집단소송 카페들에는 20만 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해 소송 의사를 나타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민희(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쿠팡의 인증 담당 개발자가 퇴사 후 약 5개월 동안 내부 시스템에 몰래 접근해 고객 정보 데이터를 빼낸 것으로 추정된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어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제도 보완을 주문했다.
이번 사태는 쿠팡이 급격히 성장했지만 내부 관리 체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서 벌어진 오버스케일링(Over-scaling)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안이나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며 “경영진이 반복되는 사고에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문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투자만 늘리고 있는 건 아닌지 원점에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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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정보 쌓여가는데 내부보안은 낙제점
…‘몸만 큰’ 쿠팡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2012년 도입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을 등에 업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코로나19를 거치며 오프라인 유통사를 제쳤고, 국내에선 적수가 없는 유통 공룡이 됐다. 쿠팡의 빠른 성장은 연도별 매출액만 놓고 봐도 확연하다. 2017년 2조6848억원이던 쿠팡의 매출은 지난해 41조2901억원으로 늘었다. 7년 만에 매출이 15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같은 기간 쿠팡 전체 직고용 직원 숫자는 1만3452명에서 9만9881명으로 약 7배 늘었다.
하지만 쿠팡은 커진 몸집에 맞지 않은 취약한 허점을 드러냈다. 쿠팡이 개인정보 무단 접근을 5개월간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쿠팡은 지난달 20일 정보 유출 피해 고객 계정이 4500여 개에 불과하다고 발표했으나 9일 만에 7500배가 늘어난 3370만 개로 정정했다. IT 업계에선 “데이터 규모만 비대해지고 내부 접근 권한 분리·감시 체계가 정비되지 않은 전형적 오버스케일링 사례”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쿠팡은 e커머스, 신선식품 물류,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등으로 사업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며 방대한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데이터 축적 속도에 맞춰 내부 보안 인력, 접근 권한 모니터링 시스템 등 인프라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는 게 쿠팡 안팎의 지적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실적과 성과에 집중한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내부통제를 포함한 컴플라이언스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고 본다”며 “단순히 투자액을 늘린다고 해서 기업 내부에 숨어 있는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번 정보 유출로 쿠팡은 역대 최대 규모의 관련 과징금 부과 위기에 놓였다. 법조계와 업계에 따르면 사안의 중대성과 쿠팡의 매출 규모(지난해 기준 41조원)를 고려하면 과징금 규모는 최대 1조원대에 달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가장 큰 과징금이 부과된 기업은 SK텔레콤으로, 2324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1347억9100만원을 부과받았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유출 시 전체 매출액의 최대 3%까지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전체 매출액에서 위반 행위와 무관한 매출은 제외하며, 위반의 중대성과 개인정보 보호 인증 여부 등에 따라 가중 또는 감경이 이뤄진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쿠팡은 이커머스와 직매입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유출된 개인정보는 사업 전반에 활용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책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진(인공지능·데이터 정책연구센터장)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이론상 쿠팡에 대한 과징금은 최대 1조2300억원이지만, 쿠팡은 ISMS-P(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보유하고 있어 50%가 감경이 가능하다”며 “만약 정보보호 관련 직원 교육 등 추가 소명이 인정될 경우 3000억~4000억원 수준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인정보 유출 사례가 잇따르는 만큼 과징금을 포함한 실효적 제재 강화가 필요하다”며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