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현재 남성만 이행 중인 병역 의무를 여성에도 부과하자는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찬성 측은 여성도 의무를 지는 것이 양성평등이라고 주장했으나 다수의 시민들은 현상 유지를 택했다.
AP통신 등은 30일(현지시간) 마감된 국민투표에서 스위스 유권자 84%가 '의무 복무 확대 헌법개정안'에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이 안건은 여성도 남성처럼 병역을 이행하라는 내용이었다.
제안자들은 기존대로 군대에 직접 입대하는 것뿐 아니라 재난 대응·환경 보호·노인 돌봄 등 다양한 공적 활동을 복무에 포함하자고 했다. 이들은 "위기에 맞서는 강한 스위스를 위해 모두가 국가에 기여하는 책임을 나누는 것"이라고 밝혔다.
양성평등 구현도 찬성 측의 주요 논거였다.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서비스인 만큼 여성도 동참해야 한다는 취지다.
제안을 주도한 36세 여성 노에미 로텐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남자들만 군대를 가는 게 불공평하다고 느껴 자원 입대했다"면서 "여자로서 소외감을 느끼긴 했지만 인적 네트워크와 각종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여성을 처음부터 배제하는 건 차별이고 누구나 공공에 기여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스위스 정부는 군대와 민방위에 충분한 인력이 있다며 반대 입장이었다. 지금보다 많은 인원이 복무하면 재정 부담이 커지며 노동시장에서 젊은 층이 빠지는 문제도 생긴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성평등을 향한 한 걸음"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이미 자녀와 가족 돌봄, 가사 노동이라는 무급 노동의 상당 부분을 떠안고 있는 많은 여성에게 추가적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지 언론들은 군 복무 방식이 다양화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스위스인포(SWI)는 "병역 이행을 군사적 차원에서 시민 복무로 바꾸자는 논의였다"면서 "안보와 사회복지 사이에서 여성의 참여는 일부 지지를 받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