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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쟁 대신 노조 요구 수용?…KTX·SRT 2년 내 통합한다

중앙일보

2025.12.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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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역에서 SRT와 KTX-산천이 나란히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정부가 고속철도인 KTX와 SRT를 2027년까지 통합하기로 했다. 고속철도 통합은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이자 철도노조 등이 강하게 요구해온 사안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 2016년 SRT(수서고속철도) 개통으로 시작된 고속철도 경쟁체제가 사라지고, 10여년 만에 코레일이 고속철도 운행을 독점하던 때로 되돌아가게 된다.

1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와 철도업계에 따르면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고속철도 통합 로드맵’을 연내에 발표할 예정이다. 로드맵에는 우선 내년 초부터 수서역발 KTX와 서울역·용산역발 SRT를 신설하는 등 운영통합 방안이 포함된다.

현재 SRT는 수서역, KTX는 서울역과 용산역에서만 출·도착하는데 서로 교차운행을 하게 되면 열차 운행 횟수가 다소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각각인 KTX와 SRT 발매시스템을 연동해 하나의 앱에서 두 열차의 표를 모두 예매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21대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고속철도 통합 공약. 자료 더불어민주당 공약집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먼저 운영통합을 시작하고, 그사이에 코레일과 SR 간의 기관 통합도 준비해 2027년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기관 통합은 코레일이 SR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게 된다.

SRT를 운영하는 공기업인 SR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3년 철도 운영의 다원화와 효율화를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말에 열차 운행을 시작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20대와 21대 대선 모두 KTX와 SRT 통합을 공약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9대 대선 때 노동계와 고속철도 통합을 약속하는 합의서를 작성한 바 있다.

철도노조 등은 그동안 고속철도 분리운영 탓에 연간 400억원 넘는 중복비용이 발생하고, 이원화된 서비스로 승객 불편이 커지고 있다며 통합을 요구해 왔다. 또 통합 시 중복비용 절감과 함께 열차운영 효율화로 하루 1만 6000석의 좌석을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코레일 사측도 같은 입장이다.
철도노조와 관련시민단체들은 고속철도 통합을 줄곧 요구해 왔다. 뉴스 1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국토부는 고속철도 단순 통합이 아니라 독일 등 선진국형으로 철도산업구조를 재편하는 방안까지 폭넓게 검토할 생각이었으나 공약 이행을 서두르라는 대통령실 요청에 급하게 통합 일정을 정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통합 전에 보다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주영 한국교통대 교통정책학과 교수는 “경쟁이 없는 독점적인 철도산업은 가격 상승 혹은 서비스 질 저하 등으로 이어져 소비자 편익을 감소시킬 우려가 크다”며 “통합의 장단점에 대한 심층적인 비교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철도노조의 주장에 대한 반박도 나온다. 박민규 한라대 철도운전시스템학과 교수는 ”1만 6000석 추가 공급 주장은 이론적인 시나리오일 뿐 현시점의 물리적·운영적 제약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낮다”며 “좌석난을 풀기 위해선 통합보다 선로 확충과 신규 차량 투입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12월 SR(수서고속철도) 개통식 모습. 연합뉴스

코레일과 SR이 2023년 발주한 차세대 고속열차 31편성이 내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납품되는 데다 오송~평택, 광명~수색 등 병목구간을 해소하는 사업이 추진 중인 상황에서 단기적인 좌석난 해소를 이유로 통합을 서둘러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장호 한국교통대 철도인프라공학 교수는 “열차가 추가 도입되고 병목구간이 해소되면 SRT와 KTX의 좌석난이 상당부분 사라질 것”이라며 “그 이후에 철도 상황을 살펴보고 통합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파업 등 유사시 철도노조의 영향력만 더 키워줄 거란 우려도 제기한다.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2019년 등 철도 파업 당시 KTX는 줄었지만, SRT는 정상운행한 덕에 시민 불편이 한결 덜했다”며 “통합하면 파업 때 승객 불편은 늘어나고 노조의 힘만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강갑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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