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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자에게만 기회 주어진다"…日노벨상 수상자의 '수상 비결'

중앙일보

2025.12.01 14:00 2025.12.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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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과학 분야에서만 27명째 노벨상 수상 소식이 이어지던 지난 10월 하순.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에 있는 도쿄대 우주선(宇宙線)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 앞엔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노벨물리학상(2015년)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66) 교수 기념비와 함께 연구 내용이 소개돼 있었다.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가 지난 10월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에 있는 도쿄대 우주선연구소에서 중성미자 연구와 노벨상 수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가지타 교수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올해 일본이 배출한 2명의 노벨상 수상자로 시작됐다. 그는 “그저 기뻐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1990년대 연구 성과로 수상한 것으로 2004년 국립대 법인화로 큰 변화를 겪으면서 기초 연구에 필요한 지원이 과거보다 적어졌다”고 했다. 그는 “연구자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자유롭게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여유’가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최근 일본은 경쟁적으로 연구계획서를 쓰고 있는데, 이런 것으로는 기초 과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기긴 어렵다”고 했다.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그는 조용한 성격으로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고교에 진학해선 궁도(弓道·활쏘기)에 빠졌다. 그의 눈에 물리학이 들어온 건 지구과학 선생님을 만나면서다. 교토대 이과대학(이학부)을 도전했지만, 시험 당일 고열에 시달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이타마대 이과대에 입학한 후, 부주장으로 궁도부 활동을 이어가던 3학년 시절. 도쿄대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지만 궁도부가 걸렸다. 3학년 때 부주장을 한 사람은 4학년 때 주장을 해야 한다는 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부가 부족해 주장을 하면 대학원을 못 간다고 생각했다. 부원들에게 미안하지만 대학원을 택했다. 그 뒤부턴 물리학이 전부가 됐다”고 했다.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의 연구 내용이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에 있는 도쿄대 우주선연구소 입구에 전시돼 있다. 김현예 특파원
1981년 스승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1926~2020)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다. 당시 고시바 교수는 기후현 가미오카 광산 지하 1000m에 가미오칸데로 불리는 관측 시설을 구상 중이었다. 광산 기숙사에서 먹고 자며 대형 전구 모양을 한 광전자증폭관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설치해 완공한 뒤론 실험과 데이터 분석의 나날을 보냈다. 이번엔 매일 반복되는 실험에 빠진 것이었다. 고시바 교수가 정년퇴직을 한 달 앞둔 1987년 2월. 마젤란은하에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났다. 연구팀은 관측 데이터를 뒤져 초신성 폭발로 뿜어져 나온 중성미자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고시바 교수는 이 연구로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가지타 교수는 “약 400년만의 일로 불리는 초신성 폭발을 관측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하지만 고시바 선생은 ‘중성미자를 관측할 수 있었던 사람은 준비했던 사람뿐’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오랜 ‘준비’의 시간 속, 발견의 희열이 찾아온 건 1997년 여름의 일이다. 관측 데이터를 들여다보다 예상과 다른 부분을 발견했다. “처음엔 내가 틀렸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연구를 하면서 혹시 이게 중성미자 질량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듬해 6월 ‘유령 입자’로 불려온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내겐 작은 꿈이 있다”고 했다. ‘우주의 대사건을 목격할 수 있는’ 중력파(重力波) 연구다. 별이 폭발하는 것과 같은 격렬한 천체 활동이 발생하면 주변 시공간이 휘어지면서 진공 속에서 광속으로 전달되는 에너지를 뜻한다. 가미오카 광산에 164억엔(1550억원)을 투입해 설치한 3km에 달하는 대형 저온중력파망원경(카구라)으로 그는 약 400명의 연구진과 함께 연구 중이다. 가지타 교수는 “2010년에 본격 건설을 시작해 15년이 지났는데, 빨리 중력파를 관측할 수 있는 장치로 완성해 우주에 대한 조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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