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기존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을 신설했다. 동시에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넘겨받는 새로운 기관인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설치하기로 했다. 두 기관은 내년 10월 출범한다. 70년 넘게 이어온 형사사법체계를 허물고 새로 만드는 수준의 개편임에도 입법과정에서 왜 중수청을 만드는지에 대한 설명은 납작했다. “검찰이 하던 수사를 넘겨받아 수사 공백을 막겠다”는 설명만 반복될 뿐이었다. 한 달 전 쯤,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회는 공소청법과 중대범죄수사청법을 우선 논의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중수청은 어떻게 설계된다는 걸까.
현장에선 중대범죄 경계 애매
관심사건 맡으려 경찰과 경쟁
민생사건 서로 회피할 공산 커
일단, 지금까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살펴보면 중수청은 1차 수사기관으로 보인다.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범죄, 마약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죄를 직접 수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설명도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 TF 단장을 맡았던 김용민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경찰과 관할이 중첩되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들어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 설계의 취지”라고 밝힌 바 있다. 중수청이 단지 1차 수사기관이 아니라 경찰을 견제·통제하는 성격까지 포함한다는 뜻인가. 이처럼 제도의 설계자들조차도 ‘중수청은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일관된 답이 없다는 것은 우려할 상황이다.
‘뭐하는 곳’ 질문에 일관된 답 없어 만약 경쟁을 위해 두 기관에 중복적 관할을 허용하면 어떻게 될까.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의 경찰과 검찰의 구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둘은 서로 전혀 다르다. 그 당시 경찰과 검찰이 모든 사건에 대한 중복적 관할을 가졌던 이유는 검찰이 ‘수사통제’ 기관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은 검찰에 송치되었고, 검찰은 이를 다시 처음부터 검토해 위법·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했다. 어차피 기소권자인 검찰에 사건이 다 모이는 구조였기 때문에 중복적 관할의 부작용이 적었다. 하지만 중수청은 경찰과 같은 1차 수사기관일 뿐이다. 그럼에도 두 기관이 같은 사건을 다루도록 설계할 경우, 현장에서 ‘중복 견제’가 아니라 ‘중복 회피’가 벌어질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나 대형 사건은 두 기관이 서로 맡겠다고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이 겪는 소액 피해나 사회적 약자의 범죄 피해는 그 반대다. 피해 규모가 적은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에 민생 사건은 고소장 접수조차 어렵다. 장애인 시설 내 학대, 직장 내 추행과 같이 폐쇄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피해자 진술이 어려워 정황·행동증거, 신체·심리 변화 등을 종합하여 사건을 풀어가야 한다.
다른 수사기관으로 넘길 방법이 열린다면 직접 사건 처리보다는 그 방법을 택하고 싶지 않을까. 혹여나 경찰과 중수청이 동일 사건을 수사했다가 결론이 다를 경우 발생하는 혼란은 어찌할 것인가. “두 기관을 경쟁시키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조직의 생리를 외면한 탁상공론자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관할 중복을 방지하고자 중수청은 ‘중대범죄’만 수사하라고 법을 만들어도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마약사건’을 중수청 관할로 정한다 해도 그 안에는 마약 제조자나 유통자가 있고, 마약을 주된 범죄의 미끼나 도구로 사용하는 자도 있다. 점조직과 공범으로 얽혀있다. 어디까지가 중대범죄인 마약범죄인가. 던지기 수법을 통해 1회 투약한 자도 중대범죄자로 보아야 할까. 진화하는 신종 기술로 나날이 늘고 있는 신종 중대범죄는 어떡하나.
대통령령으로 실시간 중수청의 수사개시 범위를 빠르게 업데이트할 수 있을까. 그 변화를 일반 국민이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을까. 같은 사건이라도 사회적 관심도가 달라지면 그 ‘해석의 여지’를 이용해 사건을 서로 가져오거나 떠넘기려 할 수 있다. 중대범죄인지 아닌지 갑론을박하는 사이 범죄자가 도망가고 주요 증거가 인멸되면 누가 책임을 지는 건가.
이뿐만 아니다. 수사기관이 새로 생기면 관련 법령과 규칙이 폭증하며 제도가 몹시 복잡해진다. 지금도 형사소송법 외에 행안부령의 ‘경찰수사규칙’, 대통령령의 ‘일반적 수사준칙’, 경찰청 훈령·예규 등 수십 개의 지침이 존재한다. 여기에 중수청이 생기면 가칭 ‘중대범죄수사청 수사규칙’과 ‘중수청 수사준칙’, 그리고 수십 개의 중수청 지침이 우후죽순으로 추가될 것이다.
제도 복잡하면 법률 비용만 커져 형벌권은 국민 기본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가 권력이므로 어떤 제도보다 높은 완결성을 요한다. 그러나 중수청 출범까지 1년도 안 남았는데 형사소송법 개정안조차 없다. 어려운 제도를 급하게 만들면 조문 중복이나 누락, 해석 충돌과 같은 혼란을 피할 수 없는데 법률 비용은 그만큼 크게 증가한다. 절차가 기관마다 다르게 쪼개지면 그 단계마다 법률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좋을지 몰라도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사람은 결국 대응을 포기하게 된다.
이제 1년도 남지 않았다. 중수청을 설계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무의 현실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법률가들이 쌓아온 경험과 합리적 대안이 제도 설계에 충분히 반영될 때에야 비로소 가난하고 배움이 적은 사람들, 그리고 생업에 바빠 권리 주장조차 어려운 시민들이 억울함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김예원=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사법연수원 41기 수료 후 장애인·아동·노인 등 자기방어가 어려운 범죄 피해자를 무료로 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범죄 피해자 지원 공로로 대통령 표창과 변호사 공익대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