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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1년 전보다 민주주의 좋아졌나

중앙일보

2025.12.02 07:24 2025.12.0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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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1년 전 오늘을 방문하곤 한다. 입법부와 대통령 간 극심한 갈등 와중에 온전치 못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꺼내 들며 자폭한 날이다. 왜 그랬을까. 원래 그런 인물이었나, 대통령직이 그를 변질시켰나. 우리는 묻고 또 묻게 될 것이다. 후손들도 그러할 테니, 다른 대통령들의 이름은 잊혀도 그는 기억될 것이다. 윤석열.

그로 인해 보수·진보가 경합하던 구체제가 무너졌고 진보 우위의 신체제가 들어섰다. 이재명·민주당 정부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정상궤도로 돌아왔는가.

윤석열 '자폭' 계엄 이후 새 질서
다수결주의 앞세우며 권력 질주
"민주" 외친 세력의 퇴행 아닌가
대선 전 “이재명·민주당 정부가 현실화한다면 사상 초유의 일극 체제 정부 여당이다. 이미 야당 시절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한다는 걸 보여줬다. 정부 여당이라면 더 강력한 효율성을 보일 것”이라고 썼다. 헌법재판소가 민주당을 향해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주문했던 걸 거론하며 대통령이 되고 여당이 되면 존중·관용·자제·대화·타협이 생겨날지 궁금해했다. 그러곤 “이들이 어디로 향하고 어디서 멈출지 순전히 이들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행정부·입법부를 장악한 데다 사법부의 일부 법관들도 이들의 자기장 내에 있는 거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이 권력의 팽창주의적인 본성에 저항할까”라고 물었다.

이제 좀 보인다. 이들은 투항을 택했다. 그리고 권력 팽창 중이다. 멈추겠지 싶은데 멈추지 않는다. 가까운 이에겐 관직을 안겼고 일부는 '재벌'이 될 터이다. 검찰은 형해화하고 사실상 특검(2차 종합특검도 한단다)을 통해 국가형벌권을 자신들의 정파를 위해 쓰도록 하고 있다. 감사원을 구박하면서도 ‘국회(사실상 민주당)의 감사 의결'이란 형식으로 동원한다. 내란 청산을 빌미로 공직사회를 해체하고 이간질하며 '치유' 프로그램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삼권분립의 사법부도 태풍권에 있다. 정치적 사안과 관련한 판결에서 여권에 밉보이는 결과를 낸다는 건 ‘여론의 조리돌림’ 그 이상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찰병력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뉴스1
짐짓 거리를 둔 듯한 이재명 대통령이 때때로 ‘종교전쟁’ ‘곳곳에 숨겨진 내란 행위’ 등을 발언하는 걸 보면, 그의 진의가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데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권력은 잔인하게 쓰는 것인가.

100석 남짓의 존재감 없는 국민의힘은 군소정당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당권을 내놓을 수 없다는 ‘윤 어게인’파들의 완고함에, 없는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있다. 사과하지 않는 전 대통령은 ‘물귀신’이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론 민주당의 도우미가 됐다.
둘 다엔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해줄 사람들(팬덤)을 동원해낼 능력이 있다. 당분간 견제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위안거리를 찾는다면 이런 일들을 우리만 겪는 게 아니란 점이다. “오늘날 선거는 정치를 바로잡고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에서 이탈하는 수단”(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이자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상황은 다수가 국가를 사유물로 바꾸어 놓는 다수결주의 정권의 부상이다. 이는 대중의 의지가 정치적 정당성의 유일한 근원”(정치이론가 이반 크라스테브, 이상 『거대한 후퇴』)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면 정당한 법 절차, 신중하고 합리적인 행동, 정치적 인내심이 필요하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에, 우리 사이에 이견·갈등이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젠 자유주의자를 자처했던 이들에 의해 자유주의가 위협받고 한때 민주주의를 목 놓아 불렀던 이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고사하고 있다. 1년 전, 계엄을 좌절시키고 탄핵을 이뤄낸 힘으로 부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길 진심으로 고대했다. 현실은 더 나빠졌다.



고정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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