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3370만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이 다시 국회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 의장이 앞서 국회의 출석 요구에 해외 체류 등을 이유로 불응해온 게 재조명되며 외국 국적 기업인의 증인 출석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는 2일 쿠팡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를 열어 김범석 의장의 사과를 촉구했다. 과방위원인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이날 출석한 박대준 쿠팡 대표를 향해 “김범석 의장이 사과할 의향은 없냐”고 물었다. 이에 박 대표는 “한국 법인에서 벌어진 일이고 제 책임 하에 있기 때문에 제가 사과의 말씀 드리고 싶다”며 사실상 김 의장 출석이 불가하다고 답했다. 김 의장은 쿠팡 모회사인 쿠팡Inc를 통해 회사의 주요 결정을 내리는 실질적인 책임자로 쿠팡Inc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돼 있다.
국회가 김 의장을 불러내려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의장은 수년 전부터 쿠팡의 불공정 거래 의혹, 산업 재해 등으로 국회 국정감사의 단골 출석 요구 대상이었다. 지난 10월 국감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소관하는 정무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상임위가 김 의장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미국에 체류하고 있어 출석이 어렵다는 취지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더불어민주당 소속 정무위원)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2일 과방위에선 김 의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은 “쿠팡의 매출은 40조원으로 (유통 기업인) 롯데·이마트·신세계 매출을 합친 37조원보다 많다”며 “대한민국에서 돈을 벌어가면서 김 의장은 뒤에 숨어 있고, 박 대표가 나와서 이 자리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돈은 한국에서 벌고 이익은 미국으로 가져가는 기형적 지배구조 속에서 경영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며 “배달의민족은 게르만 민족이 된 지 오래고, 쿠팡은 괴도 루팡이 된 지 오래”라고 질타했다.
김우영 민주당 의원은 “(김 의장이) 소비자들에게 사과하고 기업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 당국이 고발하고, 프랑스가 텔레그램 회사 CEO(최고경영자)를 체포했듯이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사업은 한국에서 하면서 ‘난 미국인인데, 한국 국회에 왜 가야 하느냐’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정무위 관계자는 “국회 증언감정법에는 상임위원장이 출석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과 합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고발 조치가 가능하다고만 규정돼 있다”며 “뭐가 합당한 불출석 사유인지는 명시가 안 돼 있어 외국인 기업가가 빈번이 쓰는 사유가 해외 체류”라고 토로했다.
김 의장은 쿠팡의 클래스B 보통주를 1억 5780만 2990주(지분율 8.8%)를 보유하고 있다. 클래스B 보통주는 주당 29배의 차등의결권을 가진 주식으로, 의결권을 기준으로 김 의장의 지분율은 73.7%다. 그는 지난해 11월 보유하던 클래스B 보통주를 클래스A 보통주 1500만 주로 전환해 처분하면서 무려 4846억 원을 현금화했다.
국회의 끈질긴 출석 요구에 외국인 기업 대표가 결국 응한 예는 있다. 연구·개발 법인 분리 추진으로 ‘먹튀’ 논란을 샀던 한국GM의 카허 카젬 사장이 2018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 출석했고, 2017년엔 구글 개인 정보 유출과 구글 플레이 갑질 논란 등으로 존 리 당시 구글코리아 대표가 불려 나왔다. 다만 답변 자체의 불성실함과 통역으로 인한 질의 시간 지체 등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다.
과방위에 이어 정무위도 3일 현안질의를 통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책임을 물을 계획이지만 “향후에도 김범석 의장 출석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민주당 소속 정무위원)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선 “김 의장의 괘씸죄가 점점 커지고 있어 유일한 제재 방법으로 국회가 고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막상 여야는 아직까지는 신중한 기류다.
이에 대해 여야에선 정반대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에선 “정무위가 지난 국감에서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했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과 유철환 권익위원장을 김 의장과 동시에 고발하려고 하지만 지난 정부 사람인 김 관장과 유 위원장 고발에 국민의힘이 난색을 보이고 있다”(민주당 관계자)는 말이 나온다. 반면 국민의힘에선 “최근 쿠팡이 정부·국회·법조계 출신 대관 인력을 대거 채용했는데, 이런 인사들과의 관계 때문에 민주당이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반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