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당시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태블릿 PC에서 1955년 대법원 판결문을 내려받았던 것으로 3일 파악됐다.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에도 대통령이 별도 해제 행위를 할 때까진 계엄 효력은 유지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특검은 계엄 해제 전 판결문을 내려받기한 건 가담의 증거라며 구속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추 전 원내대표에 대해 “혐의 및 법리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전날 오후 3시부터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추 전 원내대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추 전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4일 오전 1시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표결하기 직전 이런 내용의 판결문을 내려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보좌진이 “이런 판시가 있다더라”라며 공유한 것을 추 전 원내대표가 내려받은 것이다.
판결 핵심은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를 해도 대통령이 해제하기 전까진 해제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후 군법회의에서 받은 재판을 무효로 해달라는 피고의 변호인 측 주장을 ‘계엄 해제권자는 대통령’이란 취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팀은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결의할 것으로 예상되자 추 전 원내대표가 계엄에 동조할 근거를 미리 마련하려고 해당 판결문을 내려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2차 계엄’ 선포 시 협조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부연했다. 영장심사를 한 이 부장판사도 “국회가 해제 요구를 해도 대통령이 해제를 안 하면 계엄 효력이 유지된다는 판결인데 동조하려고 확인한 것 아니냐”고 추 전 원내대표에게 물었다고 한다. 추 전 원내대표 측은 “당시 정신이 없어서 판결문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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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원내대표로서 부족한 점 있지 않았나”
추 전 원내대표의 영장실질심사는 2일 오후 3시부터 약 9시간 진행됐다. 지난 7월 9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의 6시간40여분 심사보다 길었다. 특검팀과 추 전 원내대표 변호인단이 각자 3시간30여분씩 논리를 설명하고 오후 11시쯤부터는 이 부장판사가 질문하면 양측이 답변했다.
이 부장판사는 추 전 원내대표에게 “그 당시 원내대표로서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계엄 당시 홍철호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 한덕수 전 국무총리, 윤 전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과 통화한 내용을 자당 의원에 공유하지 않아 상황 판단, 표결 참여 여부 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추 전 원내대표는 “미진했던 것은 맞다”면서도 “사후적으로 봤을 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게 몇 가지 있다”고 수긍했다. 이어 추 전 원내대표 변호인은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범죄 행위로 볼 수는 없으며, 내란에 가담했다는 주장은 사실·법리 오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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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엔 “추경호가 尹과 언제 공모했다는 거냐”
이 부장판사는 특검팀엔 “추 전 원내대표가 윤 전 대통령과 내란 범죄를 언제 공모했다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특검팀이 추 전 원내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 계엄 선포에 대한 ‘공감대’는 있었으나 내란 범죄에 ‘사전 모의’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자 질문한 것이다.
특검팀은 계엄 당일 오후 11시22분 윤 전 대통령이 추 전 원내대표와 2분2초간 통화에서 “(계엄이) 오래 안 갈 것”이라 말한 게 ‘협조 요청’이었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이 스스로 계엄을 해제할 테니 여당은 개입하지 말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에 추 전 원내대표 측은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하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그렇게 추상적으로 지시했다는 것이냐”라고 반박했다.
이 부장판사는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이날 오전 4시50분쯤 “혐의 및 법리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면밀하고 충실한 법정 공방을 거친 뒤 그에 합당한 판단 및 처벌을 하도록 함이 타당하다”고 부연했다.
박지영 특검보는 이날 수시 브리핑을 열고 “법원 결정은 존중하지만 수긍할 수는 없다”며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하지 않으면 누구를 구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혐의 소명이 부족해서 영장이 기각된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수사 기간 만기가 14일이기 때문에 구속영장 재청구는 여건상 불가능하지만, 국민 관점에 왜 추 전 원내대표에게 혐의가 성립되는지 재판에서 충실히 설명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