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마약 차단" 내세웠지만…트럼프, 최대 '마약 밀매범' 돌연 사면

중앙일보

2025.12.02 20:5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를 통해 유입되는 마약을 차단하기 위해 “육지 공습을 곧 시작할 것”이라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직접 타격 작전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생중계로 진행한 각료회의 도중 졸음을 쫓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지상 폭격 작전이 임박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사실상의 ‘마약 전쟁’을 천명한 이날 마약 밀수 혐의로 복역 중이던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 전 온두라스 대통령을 사면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 목적이 마약 때문이 아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이다.



“나쁜 사람들이 어디 사는지 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주재한 내각회의에서 마약 운반 의심 선박에 대한 해상 타격으로 미국에서 마약 관련 사망자가 줄었다며 “공습을 지상에서도 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다”며 “누구든 우리에게 마약을 판다면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지상의 타격 대상까지 파악해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된 각료회의 도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콜롬비아가 코카인을 만든다고 들었다”며 콜롬비아에 위치한 마약 관련 시설을 타격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월부터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해 놓고, 마약을 운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에 대한 폭격을 가해왔다. 지금까지 21차례의 선박 격침이 이뤄졌고, 80명 이상이 사망했다. 특히 9월 2일 폭격 때는 1차 공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2명을 향한 추가 공격을 가하면서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방장관 “나는 못봤다…지휘관에게 권한”


이에 대해선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대응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전쟁의 안개(fog of war·불확실한 상황)가 있어 생존자들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1차 공격을 지켜본 뒤) 다음 회의로 넘어갔다”며 “지휘관이 (2차 공격을)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는 그렇게 할 완벽한 권한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6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SNS를 통해 공개한 마약 밀수 의심 선박에 대한 폭격 장면. AFP=연합뉴스

생존자 살해 지시는 프랭크 브래들리 해군 제독의 명령이었고, 자신과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선박을 침몰시키고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브래들리 제독은 옳은 결정을 했다”며 “우리는 그것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어 “우리는 마약 선박을 타격하고 마약 테러리스트들을 바다 밑바닥으로 처넣는 일을 막 시작했을 뿐”이라며, 마약을 운반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민간 선박을 공격한 것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그럼 알카에다와 ISIS(이슬람국가)를 체포해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는 하지 마’라고 하느냐”라며 정면 대응했다.

미 해군이 공개한 항고모함 '포드호'에 적재된 전투기.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인근 해상에 항모 전단을 배치한 상태다. AFP=연합뉴스


‘마약 전쟁’ 불사한다면서…마약밀매범 사면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약 밀매 혐의로 4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 전 온두라스 대통령을 사면했다. 에르난데스는 마약 밀매 조직과 결탁해 코카인을 미국으로 보내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바이든 정부 말기인 지난해 6월 징역 45년형을 선고받았다. CNN에 따르면 에르난데스가 미국으로 반입한 코카인은 400톤에 달한다.
2022년 4월 테구시갈파에서 마약 밀매 관련 혐의로 미국으로 송환되기 전, 온두라스 국가특수부대 본부에서 경찰관들의 호위를 받는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400톤의 코카인을 미국으로 반입한 혐의로 수감 중이던 에르난데스를 사면했다. AFP=연합뉴스

베네수엘라로부터 유입되는 마약을 차단하기 위해 지상전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과는 모순적인 사면 결정에 대해서 여야 모두에서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이 대통령이라도 굳이 대통령을 굳이 45년 동안 감옥에 가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에르난데스의 수감은)바이든의 끔찍한 마녀사냥이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에르난데스가 4쪽 분량의 편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뒤 사면 결정이 이뤄졌다”며 “에르난데스는 편지에서 자신을 바이든 정부의 정치적 박해 피해자로 묘사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사면 조치는 온두라스의 대선 직전에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르난데스의 출신 우파 정당 후보를 지지해왔다.



다른 속셈?…“원유 탈취 위한 군사 위협”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각료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적 위협은 “치명적 군사력을 사용한 베네수엘라의 석유 탈취가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베네수엘라 국기에 입을 맞추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우리는 노예의 평화나 식민지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분석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는 303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전 세계 매장량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최대 규모다. 베네수엘라는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며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무기’로 활용하고 있는 희토류 광산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대통령과의 최근 통화에서 마두로의 즉각적 사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은 마두로 정권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작전에 ‘자원 전쟁’ 프레임을 씌워 반미 전선을 구축하려는 마두로 정권의 시도에 대해 OPEC 회원국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계 카메라 돌아가는데…트럼프 또 ‘꾸벅꾸벅’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시간 17분에 걸쳐 생중계된 이날 각료회의의 마지막 발언자였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발언 도중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루비오 장관이 농담을 던지며 참석자들의 웃음을 유도했지만, 크게 웃은 각료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무표정하게 입술만 살짝 올리고 눈을 껌뻑이는 반응만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발언을 듣던 중 졸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한 각료회의에서 손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79세다. 재임 내내 건강 논란에 휩싸였던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향해 ‘졸린(sleepy) 바이든’이라며 조롱해왔지만, 그 역시 최근 조는 듯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달 비만치료제 가격 인하 회견 때는 내내 졸음을 쫓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심혈관·복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았는데, 주치의는 지난 1일 “검사 결과가 완벽하게 정상”이라면서도 MRI 검사 이미지는 제공하지 않았다.



강태화([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