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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베네수엘라 선박 ‘2차 공격’에 국제법 위반 논란…“전쟁범죄 수준”

중앙일보

2025.12.0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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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현지시간)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X에 9일 동태평양에서 마약 운반이 의심되는 선박에 대한 공격 장면이 담긴 영상을 게시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선박 공습에 대한 합법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백악관이 지난 9월 공습에서 마약 수송 의심 선박에 2차 공격을 가해 생존자가 사망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전쟁 범죄’ 수준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논란은 지난달 28일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로 시작됐다. 미 해군이 지난 9월 2일 카리브해에서 마약 단속 작전을 하던 중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명령으로 난파된 배에 매달려있던 생존자 2명에게 2차 공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보도였다. 이후 백악관은 1일 브리핑에서 “헤그세스 장관이 아닌 프랭크 브래들리 해군 제독의 판단이었으며 합법적 대응이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해상경비대가 주도해오던 마약 수송 단속을 9월 안보 작전으로 전환했다. 지금까지 21차례 공습을 감행해 최소 82명이 사망했다. 행정부는 “카르텔의 마약 밀매가 미국에 대한 무력 공격에 해당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사태도 합법적인 무력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프랭크 브래들리 해군 제독. AP=연합뉴스
백악관의 설명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윌리엄 버크화이트 미 펜실베이니아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베네수엘라 카르텔은 폭력적이지만 군사적 대응을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기준엔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브라이언 피누케인 국제위기그룹(ICG) 수석분석가도 “마약 밀매는 무력 공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무력 충돌 여부와 관계없이 생존자에 대한 2차 공격은 ‘전쟁 범죄’라는 주장이 나온다. WP에 따르면 1차 공격에서 살아남은 2명의 생존자는 선박의 잔해에 매달려 있어 공격 불능 상태였다. 전쟁법에 따르면 즉각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적에 대한 공격은 금지된다. 미 국방부의 전쟁법 매뉴얼도 “난파선에 발포하라는 명령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군인들이 거부해야 할 명령의 예로 명시했다.

절차상 문제도 남아 있다. 미국 전쟁권한법에 따르면 의회의 승인이 없는 군사 작전은 최대 90일 내 병력을 철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공습 이후인 9월 4일 의회에 통보했는데, 오는 3일 90일째를 맞는다.

지난 9월 15일 백악관 X에 공개된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로 의심되는 선박에 대한 공격 영상.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는데, 이는 선박 공습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알카에다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제네바 협약이 보장하는 인도적 조치를 박탈해왔다. 국무장관이 미국 국민의 안전이나 이익을 위협할 경우 테러 조직으로 지정할 권한을 갖지만, 마약 카르텔을 테러조직으로 볼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법에서 ‘테러리즘’은 정치적 동기에 따른 폭력으로 정의하는데, 마약 카르텔의 목적은 이윤 추구에 있다”고 짚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공습의 합법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두 차례 마약 운반 의심 선박에 대한 작전을 억제하려고 시도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 폴리티코는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남미 일대 마약 밀수범 사살 공약에 동조해왔다”며 “최근 잠재적인 전쟁범죄가 폭로되면서 (공화당의) 단결력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조사에 대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는 모습이다.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인 로저 워커 공화당 의원(미시시피)은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엄격히 감독하겠다”며 오는 4일 군사위원회 지도부가 브래들리 제독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에릭 슈미트 상원의원(미주리)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헤그세스를 방해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일 뿐”이라며 반발했다.



장윤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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