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청소기는 와트(W)가 아니라 파스칼(㎩)로 표시해요. 무선청소기 규정과 달라요.” "
" “중국 업체들이나 파스칼로 표기하죠. 실제 흡입력을 보려면 와트가 맞습니다.” "
지난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 가전 매장.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로봇청소기(로청)를 판매 중인 두 업체 직원에게 각각 흡입력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표기 기준을 두고 설명이 엇갈렸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제품 옆 홍보 문구에 ‘3만Pa 강력한 흡입력’ 같은 문구를 강조하고 있었다. 한국 가전업체 관계자는 “저게 맞는 표현이 아닌데 중국 업체들이 워낙 큰 숫자로 홍보를 하다 보니 제대로 된 흡입력 표기를 해놓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W와 Pa로 나뉜 흡입력 표기에 소비자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 혼란의 시작은 중국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단위가 큰 Pa을 흡입력 단위로 들고나오면서였다. Pa은 청소기 내부와 외부의 기압 차이인 진공도만을 의미한다. 반면 한국 가전 기업이 사용하는 와트는 진공도에 청소기 내부로 유입되는 공기 흐름양인 공기유량(L/s)을 곱해 산출한다. 진공도가 높아도 공기의 흐름이 없으면 흡입이 발생하지 않기에 Pa만으로는 흡입력을 직접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그래서 무선청소기의 경우 국제 표준에서 공식적으로 W를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새롭게 등장한 로청의 경우 명확한 국제 표준이 없다는 점이다. 통상 세 자릿수 이내의 수치를 나타내는 W에 비해 Pa은 만 단위로 표시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흡입력이 더 높은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실제 지난 9월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무선청소기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삼성전자·LG전자·다이슨의 무선청소기 3종 모두 최대 흡입력이 280W 이상으로 측정된 반면 1만8000~4만8000Pa의 진공도 값을 표기했던 중국 무선청소기의 실제 흡입력은 58~160W 수준에 그쳤다.
정부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이런 사태를 인식, 지난 7월 건식 로청의 경우 파스칼이 공식 흡입력 지표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와트 중심으로 표기를 통일하는 KS 산업표준 개정을 예고 고시했다. 지난 9월 고시 기간이 끝났고, 기술심의회 등을 거쳐 지난달 17일 최종 개정안이 발표됐다.
개정된 규정을 보면 “청소 로봇의 흡입 시스템의 최대 압력 값(kPa)은 흡입력(W)의 실제 성능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최대 압력 값을 흡입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하는 것은 청소 로봇의 흡입력 판단을 오도할 수 있다”며 “먼지 흡입 성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요 파라미터는 흡입력(W)과 공기 흐름양을 포함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KS 표준이 강제가 아닌 권고여서 중국 업체들은 Pa 표기를 고수하고 있다.
임성수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적극적으로 이를 홍보해 수정해나가야 할 부분”이라며 “로청 흡입력을 W로 명확히 규정하는 국제 표준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 가전업체 관계자는 “이제 막 공식 개정안이 나왔고, 내부에서도 이를 파악해 수정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