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인사아트프라자에 걸린 서예 150여점 중 심석(心石) 김병기(71) 전북대 명예교수는 이 작품(아래 사진)을 첫손에 꼽았다. 제자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고, 흙이 식은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라고 꾸짖는 『논어』의 한 구절이다. 그는 “1년 전 오늘 우리가 계엄을 겪고 보니 알게 된 것들이 너무 많다. 겉으로만 멀쩡해 보였지 안으론 나라가 썩어 있더라. 다시금 쌩쌩하고 질기고 단단하고 야무진 나무로 태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명예교수는 강암(剛菴) 송성용(1913~99)에게 서예를 배웠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 문화재청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2010년 제1회 원곡서예학술상을 받았다. 2023년 3월부터 중앙일보에 『논어』 속 한 구절을 쓰고, 짧게 해설한 칼럼 ‘필향만리’를 연재하고 있다. 최근엔 이를 묶어 책 『필향만리: 서예로 읽는 2500년 논어의 지혜』(중앙북스)도 출간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필향만리’를 위해 논어의 구절을 고르고, 이 시대의 언어로 풀어써서 연재하는 2년여 동안 마음이 평화로웠다”고 말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50점도 『논어』 글귀다. 전시는 8일까지 열리며, 매일 오전 11시, 오후 3시에 그가 직접 안내한다. ‘이야기가 있는 서예전’이다. 전시장에서 그를 만나 왜 『논어』인지 물었다. “공자는 평범한 이들과 같이 살며, 그 평범 속에서 진리를 깨달아 평범한 말로 이야기했다. 그 평범함을 전해드리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Q : 신문 칼럼으로 『논어』를 연재했다.
A : “새벽 서너시에 일어나서 글을 고르고 620자 짧은 에세이를 썼다. 아침에 경서(經書)를 쓰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다. 원고가 6편쯤 쌓이면, 날을 잡아 붓으로 썼다.”
Q : 기억에 남은 날은.
A : “현실의 분위기는 참고했지만, 특정 사건과 연결한 글은 없다. 다만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은 풀이다(君子之德風 小人草)’를 쓸 때는, 잘못된 리더들을 만난 탓에 사람들 마음이 사나워져 안타깝다는 마음을 담았다.”
Q : 사람들이 한자도 잘 모르고, 손글씨도 잘 쓰지 않는 시대에 왜 서예일까.
A : “그럴수록 서예를 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예수님·부처님·공자 등 인문학자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껏 버티지 못했을 거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 생활을 편리하게 해줬어도 인류의 정신을 청정하게 유지해 준 건 그들이 남긴 말이다. 그리고 서예는 그 말들을 쓰는 예술이다.”
Q : 인문학과 서예가 어떤 연관성이 있나.
A : “말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명상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서예는 순간의 예술이다. 필획은 수정할 수 없기에 서여기인(書如其人), 즉 글씨는 그 사람이라고들 한다. 부드러운 붓에 먹을 찍어 써야 하니 고도의 집중과 몰입, 자기중심이 서 있어야 한다. 나를 잊고 집중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다 필요한 것들이다.”
Q : 그런 서예가 오늘날 왜 쇠퇴했을까.
A : “한자를 쓰지 않아서다. ‘한자도 안 쓰는데 왜 서예를 하냐’고들 한다. ‘한자는 어렵다’ ‘한글이라는 좋은 글자가 있는데 왜 한자를 섞어 쓰냐’고도 한다. 우리말에 한자어가 70% 가까이 되는데, 한자를 안 가르치니 어휘력·문해력이 떨어진다.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 필수한자 3000자 가르치자. 애들에게 학습부담 주지 말라 할 수도 있지만, 영어단어 외는 것에 비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