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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다녀온 짱 변했다, 주먹 대신 연필 쥐게 한 '벼랑끝 학교'

중앙일보

2025.12.03 12:00 2025.12.0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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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아랑학교 새길반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경기 수원 권선구 교내에서 검정고시 준비반 설명회에 참여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 사는 김슬기(가명·18)군은 이른바 ‘싸움짱’이다. 지난해 5월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에서 제적됐다. 특수절도 혐의로 장기보호관찰 2년, 소년원 1개월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출소한 김군에게 담당 보호관찰관은 검정고시 공부를 제안하며 그를 지난해 12월 사회정착 업무협약 기관인 수원 아랑학교에 위탁했다.

김군에게 아랑학교는 희망의 공간이다. 지난 8월 난생처음 치른 고졸 검정고시에선 과학 점수가 안 나와 아쉽게 고배를 들었다. 다음 해 4월 시험엔 반드시 합격하겠다는 각오다. 김군은 “공범으로 몰려 보호처분을 받고 학교는 결국 그만뒀지만, 공부하고 싶고 대학가고 싶다”고 했다. 우선 검정고시에 합격해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아랑학교 검정고시 준비반은 ‘새길반’이라고 부른다. 아스팔트 길 위로 나온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길을 찾아 함께 가보자는 의미다. 지난 1일 개강한 검정고시 준비생은 중졸 과정 2명, 고졸 과정 7명 등 총 9명이다. 최근 보호관찰 기간이 끝난 김군을 포함한 4명에 신규 보호관찰 청소년 3명이 추가 입교했다.

경기도교육감이 지정한 중등과정 대안 위탁 교육기관인 아랑학교는 5년 전인 지난 2020년 개교한 대안학교로 학교 폭력 피해 학생 상담·치유를 하고 있다. 정규 학기엔 중등과정 위탁 교육을 하기 때문에 새길반(검정고시)은 학기 중인 12월과 3월엔 중등 위탁 교육생들이 귀가한 오후 4시부터, 1~2월은 오전부터 수업한다.

구자송 아랑학교 이사장은 “집으로 찾아가 깨우고, 오면 밥 먹이고, 밤엔 이제 잘 시간이라고 전화를 건다. 학습은 물론 생활 전반까지 돌봐야 합격하기 때문”이라며 “새길반에서 공부해서 국립대에 간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구 이사장이 고위기 청소년들을 보듬는 이유는 본인의 불우한 과거 때문이다. 85학번인 그는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대학을 중퇴하고 자동차 부품회사에 취업했는데, 사장님이 본래 대학으로 복학할 수 있도록 등록금을 대주셨다”며 “멈췄던 공부를 다시 하라고 용기를 준 그 어른에게 받은 대로 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제도권 밖 틈새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수원 아랑학교 새길반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경기 수원 권선구 교내에서 검정고시 준비반 설명회에 참여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수원시는 지난해 아랑학교의 보호관찰 청소년을 위한 검정고시 준비반을 인지하고 구 이사장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지원 근거를 마련하라는 수원시 요청에 따라 수원시의회는 지난 6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수원시 청소년 보호관찰 대상자 등 사회정착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엔 ‘시장이 학력인정 시험 등에 대한 학습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담겼다.

하지만 2026년 예산안에 보호관찰 청소년 학업 지원 사업은 없다. 조례를 근거로 시가 2026년 신규 제시한 공모사업 명칭은 ‘청소년건강성장 돌봄지원사업’(보조금 3000만원, 운영 기관 3곳에 1000만원씩)이었다. 아랑학교는 보호관찰 청소년이 빠진 이 사업에 마지못해 응모했으나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기능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예산 심의 과정에 전액 삭감됐다.

구 이사장은 “지원 근거를 만들어오라고 하더니 조례 제정 이후엔 온라인 교육 지원을 위주로 하는 학교밖센터와 사업이 중복된다고 전액 삭감했다”며 “그간 노력이 수포가 되는 것 같고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을 해주지 못해서 허탈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수원시는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당장 해결책은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보호관찰 청소년으로 한정하면 범위가 좁아져 예산 심의를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위기 청소년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사업을 설계했는데, 시 재정이 좋지 않아 삭감됐다”며 “아랑학교의 노고를 모르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손성배.김예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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