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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퇴직” 근데 무너졌다…포스코 박팀장 살린 무기 2가지

중앙일보

2025.12.03 12:00 2025.12.0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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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인생 후반전, 알면 알수록 달라집니다.
은퇴 시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 해결법, 벤치마킹할 만한 새로운 취미 등 은퇴 세대를 위한 맞춤형 정보를 찾으시나요? 경제적 노후 설계부터 내게 맞는 취미생활, 제2의 직업까지 많은 정보를 담았습니다. 더중앙플러스 추천 시리즈 ‘은퇴 Who(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60)’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재테크를 통해 대기업 부장 급여 이상의 월 소득 마련, 박사 학위 취득, 내 아이디어로 20년 이상 사업을 추진한 경험….

2022년, 57세 나이로 회사를 자발적으로 퇴직하면서 돌아본 나의 회사 생활 성적표다. 젊은 시절부터 푼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했던 것들이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자 내게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나이 오십 먹어서 공부할 결심을 하고 휴직한 뒤 홀로 일본으로 떠나 박사 학위 취득에 성공했다. 또 20년간 사내 벤처에서 ‘철강 가공 수출 물류 사업’이라는 아이디어에 매달려 다양한 실험을 해봤다.

" 포스코라는 든든한 회사를 다니면서 재직 기간 동안 제 꿈을 원 없이 펼쳤던 것 같아요. 퇴직을 하려고 보니 제 스스로 ‘준비된 퇴직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박성하 작가가 지난 7일 서울 삼성동의 한 서점에서 책을 보며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 정도면 여유 있고 편안한 은퇴 이후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막상 퇴직을 하니, 뜻밖의 우울이 엄습했다. 또 먹는 족족 체하고 속이 쓰려오는 등 건강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자유 시간은 넘쳐나는데 하나도 여유롭지 않고 불편하기만 했다.

" 회사에 미련이 남았거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었어요. 그런데 매일 출퇴근하고 업무에 몰입하던 습관이 몸에 박힌 거죠. 이 루틴이 깨지니까 심리적·육체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더라고요. "

이때 깨달은 게 ‘루틴의 중요성’이다. 은퇴 후의 성공한 삶을 위해선 ‘직장인 박성하’(60)가 아니라 ‘자유인 박성하’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직장인의 루틴이 사라진 자리에, 온전히 나만을 위한 ‘자기 경영’ 루틴을 새롭게 구축하지 못하면 불안과 두려움이 떠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저는 건강과 경제적 문제만 해결되면 퇴직하고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퇴직해 보니 내 삶을 지탱한 건 돈보다 루틴이란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루틴이 새로 서니 그제야 안정감과 자유가 느껴졌으니까요. "

‘자유인의 루틴’을 구축할 수 있게 해준 나만의 무기가 두 가지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해 자유 시간을 알차게 쓰면서 나만의 목표를 성취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덕분에 작가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 두 가지 무기가 뭔지, 그것으로 만들어낸 나의 새로운 루틴과 ‘은퇴자 생활 수칙’까지 모두 공개하겠다.

“루틴 무너지니 자유 시간이 공포”
포스코는 퇴직 1년 전 유급 휴가를 준다. 출근하지 않고 퇴직 후 삶을 준비할 수 있게 월급 일부를 지원해 준다. 업무에서 손을 뗀 상황이니, 사실상 이때부터 본격적인 퇴직에 접어든 셈이다.

일이 끊기자 나를 가장 괴롭힌 건 루틴의 붕괴였다. 머리로는 분명히 퇴직 상태인 걸 받아들였는데, 내 몸은 그렇지 않았다. 출근할 필요가 없는데도 아침 6시만 되면 여지없이 눈이 떠졌다. 서둘러 몸을 일으키다가 이내 ‘갈 데가 없네’라는 생각이 밀려오면 서글퍼졌다. 건강 관리를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도 문득 ‘이거 끝나면 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 회사 다닐 때는 일을 하면서도 ‘이건 몇 시까지 끝내고 다음엔 저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잖아요. 하루하루 매 순간이 빡빡하게 돌아갔고요. 그런데 갑자기 그 긴장의 끈이 뚝 끊겨버리니까 이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습관처럼 빠릿빠릿 움직이다가 ‘아이고, 나 좀 봐라. 시간도 많은데 왜 이리 서두르나’ 싶은 거죠. "

‘시간이 많다, 그런데 할 일은 없다’는 감각은 ‘여유 있다’는 느낌과 완전히 다르다. 삶의 체계가 무너지고 허허벌판에 서 있는 것만 같아 매사 허무하고 의욕이 사라졌다. 여유가 아닌 불안과 공포만 밀려왔다.

(계속)
퇴직 후 우울감과 불안, 공포에서 박성하 작가를 잡아준 건 기록 습관이었다. 그는 1989년 포스코에 입사한 때부터 다이어리 쓰는 걸 습관화해 지금까지 쓴 다이어리만 90권이 넘는다. 재직 시절에 썼던 다이어리에는 회사에서 꼭 처리해야 할 일들이 일정별로 빼곡히 정리돼 있다. 박 작가는 퇴직 후엔 완전히 새로운 기록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은퇴자용 기록법’을 만들었다. 이 기록법 덕분에 박 작가는 퇴직 후에 무너진 루틴을 화복하고 ‘퇴직 후 10년 목표’를 설계·성취할 수 있었다.

또 박 작가는 퇴직자들에게 “챗GPT 등 생성 AI 활용 능력을 갖추면 은퇴 후 창조적인 삶이 펼쳐질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AI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아이디어를 확장·심화해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박 작가가 강조한 ‘은퇴자용 기록법’과 ‘생성형 AI 활용 노하우’,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준비된 퇴직” 그래도 우울했다…포스코 박팀장 살린 무기 2가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2425
‘은퇴 우울’극복하고 새로운 ‘인생 2막’ 개척해낸 〈은퇴Who〉 스토리 더 보시려면
“대박 사업? 이래야 먹힌다” 빚쟁이를 건물주 만든 ‘찐빵’
전북 부안에 위치한 슬지제빵소의 김갑철 창업주가 자녀들이 지은 베이커리 카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정필 객원기자
김갑철(68)씨는 1998년 IMF 외환위기로 10년 넘게 근무한 한국도로공사에서 희망퇴직을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1살, 네 자녀를 먹여 살리려면 한시도 쉴 수가 없었다. 양계장 일을 배우던 아내와 의기투합해 퇴직금, 위로금, 은행 빚까지 끌어모아 양계장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년도 채 안돼 조류독감이 덮쳐 닭 10만 마리를 고스란히 폐사했다. 그에게 남은 건 빚 7000만원이었다.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종잣돈이 들어가지 않는 일을 찾던 그의 눈에 ‘찐빵집’이 쏙 들어왔다. 그가 찐빵으로 10년만에 빚을 다 갚고, 자녀에게 물려줄 가업을 일군 노하우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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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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